‘경매’라고 하면 보통은 부동산 경매를 먼저 떠올린다. 내 집을 마련 중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끔은 연예인의 물품이 경매에 등장해 대중의 관심을 끈다. 최근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열연 중인 남자 주인공 김수현의 니트가 1000원에 시작해 600만 원대에 낙찰됐다. 그의 니트에 가슴 설레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서다.
일반인과는 거리가 좀 있는 ‘고상한’ 경매로는 미술품 경매가 있다. 소액으로도 미술품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2007년경부터 일부 일기도 했지만 여전히 애호가들의 시장이다.
이런 미술품 경매 시장이 작년 말부터 이른바 전두환 일가의 미술품으로 ‘성황’이다. 작년 12월부터 이번 달 온라인 경매까지 수차례 계속된 경매에서 모든 미술품이 낙찰된 것이다. 내달 12일 마지막 경매를 앞두고 있다.
1980년대 말 대학을 다닌 세대로 ‘전두환’이라는 이름에 뭔가 금전적으로나마 긍정적인 가치가 매겨지는 듯해서 만감이 교차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썼다는 서예 글씨 ‘고진감래 인행침착(苦盡甘來 忍行沈着·고생 끝에 낙이 오니 행동을 참고 침착하라)’은 80만 원에 시작해 1100만 원에 팔렸다. 그의 차남 재용 씨가 그린 그림 20점은 1404만 원에 낙찰됐다. 일반적인 습작에 비해 2, 3배 비싸게 팔린 것으로 보인다. 좀 과하게 표현하면 ‘정의’가 ‘자본주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듯해 씁쓸하다.
경매에서 유찰되는 것 없이 모두 팔려 나가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미술품 경매 시장은 2007년 정점을 찍은 이후 7년 동안 계속 침체기에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사람들은 전두환 일가의 부동산 경매에서는 그 사용 가치에만 집중했다. 전 전 대통령의 삼남 재만 씨의 빌딩이 두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보다 낮게 낙찰됐고, 장녀 효선 씨 명의의 경기 안양시 임야와 주택도 유찰 사태를 면치 못했다. 추징금 환수를 위한 미술품 경매가도 이랬어야 하지 않을까.
미술계에서는 ‘사연이 있는 미술품은 높은 가격에 팔린다’는 속설이 있다. 이는 미술품 소장자의 신분이나 구매 과정도 작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장자가 반드시 역사에 긍정적인 인물이거나 공동체에 선한 일을 한 인물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번 경매를 통해 우리 사회가 용인하는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이 앞선다.
재용 씨의 습작마저 모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그 소식을 방송 화면 하단으로 나가는 ‘스크롤’로 작게라도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전두환’과 ‘가치’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어울려서도 안 될 것 같은 조합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추징금 환수를 위한 경매가 나쁠 것은 없다. 다만, 그런 작품이 인기리에 낙찰됐다는 것은 누군가 그 작품들에 ‘가슴을 설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영 마뜩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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