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용석]빵집규제 1년이 낳은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0일 03시 00분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재계 순위 3위인 SK그룹은 “SK는 내수기업”이라는 말을 참 듣기 싫어한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주요 사업이 이동통신 주유소 등 국내 기반사업이라 나온 말이다.(사실 SK가 하는 정유 사업은 최대의 수출 산업이다.)

SK가 수출을 많이 하는 반도체 회사(SK하이닉스)를 인수했을 때 수출 비중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을 정도다. 기업들 사이에선 정부로부터 여러 정책적 배려를 받는 수출기업과 달리 내수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여론도 곱지 않다. SK는 이런 편견 탓에 여러모로 손해를 봤다.

이런 속앓이를 잘 아는 사람들은 SK가 창립 60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내수의 비중을 앞질렀다고 발표한 것을 남다른 심정으로 지켜봤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수출의 의미가 큰 것은 숙명적인 일이다.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로선 좋은 제품을 많이 수출해 경제 영토를 넓히는 것만이 살 길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고속성장의 견인차는 누가 뭐래도 수출산업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사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기업의 글로벌화와 생산의 자동화로 청년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수출 성장이 더이상 우리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올해 초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내수기업 다시보기’를 제안했다. “기존의 제조업 중심 수출만으로는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해졌습니다. 내수를 활성화해서 내수와 수출이 균형 있는 경제를 만들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이 나온 뒤에도 내수기업에 대한 대접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직 빵에만 열정을 쏟아부어 4조 원대 그룹을 일군 SPC에 빵집 체인인 파리바게뜨 사업을 더이상 키우지 못하게 하는 규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자율협약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게 사실상 규제나 다름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전문가들은 내수기업이 찬밥 대접을 받는 이유에 대해 기업의 혁신이 동반하는 파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내수기업의 파괴는 골목상권과 같은 국내의 피해자를 만드는 반면, 수출기업의 파괴는 국내에 피해자를 많이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출기업은 지원하고 내수기업은 규제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안전한 판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박 대통령이 “규제개혁이라고 쓰고 일자리 창출이라고 읽는다”며 매일같이 규제 완화를 독려하는 와중에서도 대형마트와 백화점 규제, 빵집 규제 등을 풀어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형마트, 외식업 분야의 규제는 오히려 늘어날 분위기다.

1∼3년째를 맞는 몇몇 규제는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강제휴무의 영향은 지난해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관련 업계에선 전반적인 소비가 줄어들면서 그 영향을 받은 식품기업, 외식기업들의 실적이 줄줄이 악화되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3월로 1년째를 맞는 빵집 규제가 살린 것은 동네빵집이 아니라 파리바게뜨, 뚜레쥬르와 경쟁 관계인 다른 프랜차이즈의 빵집들이었다. ‘삼성이 동네빵집 다 죽인다’는 여론에 밀려 호텔신라에서 대한제분으로 주인이 바뀐 아티제는 과거와 달리 골목상권 내 점포를 하나둘씩 늘려가고 있다.

내수시장에서 덩치 큰 기업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소상공인을 배려하는 건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갈등을 발전적으로 풀려 하지 않고, 대기업의 두 팔을 묶어두는 방법만으로는 원하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여러 규제의 결과물이 이를 보여준다. 이해관계에 포박당한 채 활기를 잃고 있는 우리 내수경제는 정부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

김용석 소비자경제부 차장 nex@donga.com
#SK그룹#수출#일자리 창출#규제개혁#강제휴무#빵집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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