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에 출전 중인 한국 선수들이 안현수 후폭풍 때문에 ‘야코가 많이 죽었다’고 한다면 눈총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성적이 안 좋은 것도 언짢은데 그걸 ‘일본말’로 꼬집었다고 해서 말이다.
그러나 ‘야코죽다’ ‘야코죽이다’에 쓰이는 ‘야코’는 일본말이 아니다. 우리말이다. 품위 있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상생활에서 못 쓸 말도 아니다. 그런데도 일본말로 잘못 알아서인지 신문과 방송에서는 대부분 ‘기죽다’ ‘기죽이다’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야코’는 서양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양코배기’(물론 사용해서는 안 될 말이다)에서 나왔다.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대체로 코가 크다 보니 ‘양코’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이후 ‘양’에서 ‘ㅇ’이 떨어져 나간 게 ‘야코’다. 야코는 우쭐하고 거만한 태도를 이르는 말이 됐다. 따라서 ‘야코죽다’를 ‘기죽다’로, ‘야코죽이다’를 ‘기죽이다’로 바꿔 써도 문제는 없다. 다만, 우리말인 ‘야코’를 일본말로 잘못 아는 바람에 ‘기를 쓰고’ 버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말에는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세월의 이끼가 덮여 있기 때문이다.
‘야코’와 비슷한 신세가 ‘라면사리’ ‘국수사리’에 쓰는 ‘사리’다. ‘사리’는 국수나 새끼, 실 등을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뭉치를 뜻하는 고유어이다. 그런데도 접시를 뜻하는 일본어 ‘사라’와 비슷한 탓에 일본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다시 ‘코’로 돌아가자면 코는 비유적으로 ‘어떤 기세’를 나타낸다. 근심과 고통으로 맥이 빠지면 ‘코가 쉰댓 자나 빠졌다’, 누군가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면 ‘콧김이 세다’, 자존심과 자기주장이 강하면 ‘콧대가 세다’, 다 된 일을 망쳐버리면 ‘코 빠뜨린다’고 하는데, 이런 용례가 모두 ‘기세’와 관련이 있다.
며칠 있으면 소치 겨울올림픽이 끝난다. 4년을 오로지 올림픽을 위해 땀 흘려온 선수들이 메달을 바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이제 도전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선수들이여, 결코 야코죽지 마라. 여러분이 달고 있는 태극마크가 그 어떤 메달보다 위대하다. 그리고 평창 겨울올림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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