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가 소치 겨울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종목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국민 모두가 아쉬웠겠지만 누구보다 아쉬운 사람은 작별 선물로 국민에게 금메달을 선사하지 못한 김연아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상식 무대에서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경쟁 선수에게 축하해주고 관중의 환호에 답했다. 아무나 보이기 힘든 모습이기에 더 아름다웠던 마무리였다.
국내외에서 판정 논란이 일고 있지만 김연아는 담담하다. 그는 “실수는 없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할 건 다 했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연아의 진짜 상대는 금메달을 딴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가 아니라 4년 전 밴쿠버 올림픽에서 사상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자신이었다. 그가 이번에 누군가에게 졌다면 바로 4년 전 자신에게 진 것이다. 한동안 아이스링크를 떠났었고 부상에 시달렸다. 나이도 있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고, 그것으로 만족했다. 이것이 올림픽 정신이다.
“한 달 중 컨디션이 좋은 날이 하루 있을까 말까 하다.” 중학교 시절 단짝 친구가 일본 니혼TV에 털어놓은 김연아의 비밀 고백이다. 김연아는 이미 2010년 여자 피겨에서 한국인은 불가능하다는 금메달을 따 세계 피겨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김연아는 경기 직후 “밴쿠버 때는 금메달이 간절했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는 동기 부여가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김연아를 다시 불러낸 것은 국민이었다.
그는 2011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단의 일원으로 나서 유치에 성공했고 2013년 소치 올림픽 출전권을 늘리기 위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서 1등을 차지해 3장의 티켓을 따냈다. 그 덕분에 김해진 박소연 선수는 처음 올림픽에 도전해 2018년 평창 올림픽에 대비한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국민의 소리 없는 부름에 응해 준 김연아에게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피겨 여자 싱글 경기는 겨울올림픽의 꽃이다. 자기 나라 선수가 출전하지 않아도 세계인이 TV로 지켜본다. 김연아는 우아하고 당당한 여왕다운 태도로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프랑스에서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여성을 ‘마리안’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마리안을 찾는다면 바로 김연아일 것이다.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이번에도 끝까지 분투한 당신. 앞으로도 귀감으로 남아 미래 세대가 당대의 자랑스러운 여성을 ‘우리 시대의 김연아’라고 부를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