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임우선]악몽을 이기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4일 03시 00분


임우선 산업부 기자
임우선 산업부 기자
몇 달 전 죽을 뻔했다. 투신하는 사람과 부딪칠 뻔해서다. 한 아저씨가 건물에서 뛰어내렸는데, 현관에서 10초만 늦게 나왔으면 정통으로 부딪칠 뻔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말로는 설명 못한다.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지만 이건 정말 심했다.

그날 일로 겉으로는 어딜 다친 건 아니었지만 내상은 심각했다. 평범했던 일상이 악몽이 됐기 때문이다. 일단 모든 건물이 무서워졌다. 혹시 또 뭐가 떨어지지 않나 싶어서다. 건물과 가까운 인도로 다니는 게 싫어서 차도 가장자리를 따라 걸을 정도였다.

사고 장면은 머릿속에 제대로 똬리를 틀었다. 안 그러려고 노력해도 매일 그날 일이 수십 번씩 되살아났다. 온 몸의 신경은 잔뜩 곤두섰다. 주변의 작은 소리, 작은 움직임에도 깜짝 놀라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입맛도 없고 잠도 깊게 이룰 수 없었다.

원망스럽고 불안한 감정은 한 달 가까이 계속됐다. ‘멀쩡했던 날 왜 이렇게 만든 거야’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하지만 딱히 찾아가 따질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의식적인 자기최면 끝에 몇 달 만에 나아졌지만, 말로만 듣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S)’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의 생존 학생들이 걱정되는 건 이 때문이다. 사고 자체도 문제지만 사고 이후 찾아오는 고통과 불안은 더 길고 심각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게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물었다. 공통적으로 나온 얘기를 소개한다.

첫째, 사고의 기억을 하루빨리 밖으로 쏟아내야 한다. 가장 나쁜 건 사고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반복해 회상하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괜찮은 척하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럴수록 기억은 더 생생해지기 때문이다. 전문의들은 “이번처럼 집단이 겪은 사고는 ‘집단상담’이 특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가족 등 주변 사람들도 함께 상담을 받는 등 힘을 합쳐 고통을 나눠야 충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의 기억을 무조건 회피할 게 아니라 현실로 직시하고 다 함께 풀어내는 과정에서 상처가 치유된다는 것이다.

둘째, 불안이 심할 경우 슬기롭게 약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약물치료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에 대해 전문의들은 “몸살이 나서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듯 뇌가 충격으로 열이 나는 상태라 약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셋째, 나쁜 기억이 장악한 머릿속에 긍정적 기억을 심어줘야 한다. 한 전문의는 “집단사고의 경우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클 수 있다”며 “이런 슬픔 대신 ‘이렇게 살아있어 감사하다’란 생각을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을 갖고 노력하면 기억은 치유되며 사고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집단상담 등의 대응이 사고 직후 최대한 빨리, 늦어도 2주 내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와 관련된 기업과 학교, 가족이 머리를 맞대 학생들의 마음을 빨리 다독였으면 한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임우선 산업부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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