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나미]선수만 외롭게 뛰는 한국 스포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4일 03시 00분


김나미 국제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
김나미 국제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
며칠 전 소치 바이애슬론 경기장을 둘러보다 길을 잃었다.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자원봉사자가 다가와 “May I help you(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걸었다. 각종 대회 참가차 올해로 9번째 방문한 러시아이지만 이렇게 친절한 러시아인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소치 올림픽을 통해 ‘러시아의 부활’을 알리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호감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김연아 선수 때문이다.

판정에 대한 의혹은 나 같은 한국인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김 선수의 출전을 함께 지켜본 외국 경기 단체 임원들은 점수가 나오기도 전에 내게 악수를 청하며 “100% 금메달감”이라고 했다. 그러다 은메달 판정이 나오자 분개했다. 동메달을 딴 카롤리나 코스트너 선수가 속한 이탈리아 사람들까지도 내게 “판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는 동메달에 만족한다. 코스트너 선수도 잘했지만 김 선수와는 압도적인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은메달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결과”라고 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보며 러시아가 마음만 먹으면 금 은 동 모두를 석권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렇게 불리한 조건에서 은메달을 딴 김 선수가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러웠다.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심사위원단의 주관적 판단에 많이 좌우되어 홈경기의 이익을 보기가 무척 쉽다. 그러니 김 선수의 은메달은 금보다 더 값진 것이 아닌가.

이참에 러시아 관중의 경기 관람 태도도 지적하고 싶다. 이들은 자기네 나라 사람들이 출전할 때는 ‘러시아’ ‘러시아’를 크게 외치며 거세게 응원을 한다. “경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러시아’ 소리밖에 안 들리니 이게 무슨 국제 올림픽이냐”는 외국인들의 비아냥도 많이 들렸다. 경기장에서 러시아 사람들이 외국인 선수들에게 보내는 응원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외국 선수들을 자기네 나라 선수들을 위한 들러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자신들에게는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인색한 체육 문화가 너무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소치는 막을 내렸고 4년 뒤 평창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메달이나 순위를 넘어선 명실상부한 스포츠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이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선수 한 명이 잘해서 금메달을 따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이번 피겨스케이팅 경기 심사위원단에 한국인이 있었다면 불공정한 판정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더불어 무엇보다 아쉬운 건 우리의 얇은 선수층이다. 지금 우리 겨울올림픽은 종목마다 출전 선수가 한두 명에 불과할 정도로 출전 선수 자체가 부족하다. 이번에 많은 메달을 가져간 스포츠 선진국들의 힘은 두꺼운 선수층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지도자도 태부족이다. 독일 바이애슬론팀의 경우 선수 수보다 지도자 수가 두 배 이상 많다. 우리 체육계는 아직도 영어 잘하는 사람을 뽑아 스포츠 운영을 가르칠 것이냐, 아니면 스포츠 전문가에게 영어를 가르칠 것이냐를 갖고 논쟁 중이다. 영어는 통역을 쓰면 되는 수단에 불과하다. 기술적 측면에서 종목을 잘 이해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한국이 스포츠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수도 많아야겠지만 심판도 많아야 하고 스포츠 외교관도 많아져야 한다. 이런 강력한 지원군은 결국 선수들의 전력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우리 선수들을 혼자 뛰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뒤에서 지지해줄 든든한 사람들이 더 늘어야 한다. ―소치에서

김나미 국제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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