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치 겨울올림픽을 통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올림픽 사상 최대인 510억 달러(약 54조 원)를 투입한 스포츠 축제를 통해 ‘새롭고 강한 러시아’를 세계에 보여주려 했다. ‘푸틴의,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올림픽이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제사회는 올림픽 폐막 이후에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올림픽이 끝나 숨을 돌린 그가 유혈 참극이 벌어진 우크라이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옛 소련 붕괴 후 독립했지만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서방과 가까운 서부와 러시아와 가까운 동부는 갈등과 반목을 거듭했다. 두 지역은 언어와 종교도 다르다. 자칫하면 내전이 일어나 옛 유고 연방처럼 나라가 쪼개질 수도 있다.
이번 사태는 친(親)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부패와 무능,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재정 파탄과 빈곤이 겹치면서 일어났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작년 11월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돌연 거부하고 러시아에서 150억 달러의 경제 지원을 받기로 하자 반(反)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주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80여 명을 숨지게 한 발포의 책임을 물어 대통령을 탄핵했고, 옥중에 있던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를 석방했다. EU와의 교류를 통해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경험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유럽의 가치’를 선택한 것이다. 10년 전 야누코비치의 대선 부정을 따지며 무혈 오렌지혁명을 주도했던 티모셴코는 감옥에서 풀려나자마자 “여러분이 우크라이나의 암적 존재를 제거했다”고 선언했다. 야누코비치는 지지 기반인 동부로 피신했으나 여당에도 버림받은 처지다.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5월 조기 대선에서 결정되겠지만 러시아의 개입 여부가 변수다.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 반도에 흑해 함대를 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서방 간의 결속 강화를 자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할 개연성이 있다. 러시아는 2008년에도 자국 시민권자 보호를 구실로 인접국인 그루지야를 침공했다. 푸틴 대통령이 과거 연방국에 대한 영향력 복원을 노려 악수(惡手)를 둘 수도 있다. 그가 소치 올림픽을 통해 보여준 대(大)러시아의 야망을 우크라이나로 연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