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투자 기업들의 올해 주주총회에서 횡령 배임 등으로 주주 가치를 침해한 기업인의 등기이사 선임에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경영진의 불법, 편법 행위를 방관하거나 장기 재임한 사외(社外) 이사의 연임도 반대할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기업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2014년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에 이런 내용을 포함했다.
국내 증권시장에서 국민연금의 비중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기업은 200곳을 넘는다. 웬만한 대기업은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고, 지분으로만 보면 1대 주주인 곳도 적지 않다. 2008년 주주총회 때 5%대이던 반대표 행사 비중이 지난해 10%대로 올라가면서 국민연금이 의결권과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국민연금이 기업에 투자한 만큼의 의결권과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부에서 총수의 독단적인 경영을 통제하기 어려운 한국의 기업 풍토에서 국민연금이 가입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경영진의 잘못된 결정에 제동을 거는 것은 바람직하다.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기업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황제 경영’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는 기업문화부터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의결권 확대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정부가 국민에게 강제로 징수해 운영한 뒤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돌려주는 공적연금이다. 아무리 국민연금의 지배 구조를 중립적으로 한다고 해도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하기 어렵다. 좌파 운동권 출신의 영향력이 컸던 노무현 정부 시절 국민연금의 의결권 확대를 통해 대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려는 움직임에 재계가 공포를 느꼈던 것도 이런 잠재적 위험 때문이었다.
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확대는 일정 부분 불가피한 추세이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들거나 부당한 경영 간섭으로까지 치달으면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 국민연금은 건전한 기업 감시자에 그쳐야지 기업을 흔드는 ‘권력 공룡’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논란을 줄이려면 ‘정치적 사회적 문제 해결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사용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만든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