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은행 도쿄지점의 영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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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계에서 도쿄지점 근무는 오랫동안 ‘출세 코스’로 꼽혔다. 일본은 세계가 돌아가는 각종 정보가 모여드는 선진국이어서 선발 과정부터 인재들이 몰렸고 경쟁도 치열했다. 정부 부처와 대기업의 도쿄 주재원들은 귀국 후 좋은 자리로 옮겨가는 일이 많아 은행에서 중시하는 인맥 쌓기에도 도움이 됐다.

▷2000년대 초까지 각 은행 도쿄지점장은 임기를 마친 뒤 대부분 임원으로 승진했다. IBK기업은행에서 첫 내부 공채 은행장 기록을 남긴 조준희 전 행장은 도쿄지점장을 지낸 ‘일본통(通)’이다.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최영환 전 수출입은행 부행장, 차순관 KB저축은행 대표, 백국종 우리P&S 대표, 이신기 신한금융지주 부사장도 마찬가지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지점장은 서울에서만 했지만 한일은행 도쿄지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은행 도쿄지점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건이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전직(前職) 국민은행 도쿄지점장과 부지점장이 거래처에 4000억 원대의 불법 대출을 하고 리베이트를 챙긴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도쿄지점도 수백억 원대의 부실대출 정황이 발견돼 금융감독원이 검사에 착수했다. 한류 붐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자영업을 하는 이른바 ‘뉴 커머(New Comer) 한국인’들의 자금 수요가 늘면서 은행 도쿄지점들이 ‘갑(甲)질’을 할 수 있는 구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일본의 경제력 약화와 인터넷을 통한 신속한 정보 유입으로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상당수 은행에서 일본의 위상이 낮아졌다. 도쿄지점장을 끝으로 옷을 벗는 사례가 늘면서 도쿄 근무자들의 실력과 직업윤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자녀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미국 영국 등 영어권을 선호하고 일본 근무를 꺼리는 은행원도 많다. 은행가에서 도쿄지점이 과거와 같은 영광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보내도 된다고 여기는 ‘2급 해외지점’으로 전락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고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나라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도쿄#은행#불법 대출#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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