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평수에 관계없이 집은 늘 비좁기 마련이다. 평수가 문제가 아니라 물건들 때문이다. 작은 집에 살다가 큰 집으로 이사 가면 처음에는 넓다고 좋아하지만 곧 물건이 하나둘 쌓이면서 점차 집이 좁게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 분은 물건 하나를 사면 반드시 하나를 버리기로 아내와 약속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신발을 한 켤레 사면 신던 신발 한 켤레는 버리는 식이다. 버리지 못하겠다면 아예 사지 않기로 정했다고 한다. 나도 그 아이디어를 실천해 보기로 하고 우선 봄맞이 정리정돈을 시작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필요 없는 물건부터 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웬걸, 버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물건의 필요성에 대한 식구들의 의견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버리고자 한 목표량의 반의반에도 못 미쳤다. 나 역시 큰맘을 먹고 버리는 쪽에 두었던 물건을 아까워서 다시 버리지 않는 쪽으로 분류했다. 그렇게 이쪽으로 놓았다 저쪽으로 놓았다 반복하며 한나절을 보내다 결국 반을 버리고 반은 살리기로 했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 바람에 공간이 좀 생기자 그것만으로도 집이 훤하고 속이 다 시원하다. 이것들을 왜 진즉에 버리지 못하고 끼고 살았는지 혀를 찼다.
지난 주말에는 출국을 앞둔 딸이 짐 싸는 것을 옆에서 거들었다. 가방이 불룩하도록 넣었다가 아무래도 항공사 수하물 규정량을 넘을 것 같다며 다시 빼고, 다음 날에는 그래도 현지에서 꼭 필요할 것 같다면서 다시 넣기를 거듭했다. 그렇게 한참 고민하다 결국 가장 필요한 우선순위대로 짐을 꾸렸다. 덧셈보다 뺄셈이 어려움을 실감한다.
하찮은 물건 하나 버리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까. 내 마음의 방에도 흔쾌히 버리지 못하고 쌓여 있는 묵은 감정들이 참으로 많다. 괘씸하고 섭섭하고 또는 억울하고 노여운 감정들을 그때그때 정리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두었다. 그것들이 남아 있어 내 마음을 어둡고 우울하게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버린다는 게 쉽지 않다.
베란다에 있던 짐들을 버리니 햇볕이 더 많이 들어와 집안이 훨씬 밝아졌다. 집안 정리가 끝났으니 이번에는 내 마음의 방을 들여다봐야겠다. 쓸데없는 물건들을 많이 버릴수록 개운하고 편안해지는 원리를 내 마음에도 적용할 일이다. 산뜻한 새봄이 눈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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