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막을 내린 2014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 끝에 은메달을 받은 ‘피겨여왕’ 김연아가 회한 담긴 이 한마디를 던지는 순간, 나는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의 행복한 도전을 담은 영화 ‘쿨러닝’ 속 다음 대사를 퍼뜩 떠올렸다.
“금메달이 없어서 만족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얻는다 해도 만족할 수 없다.”
그렇다. 진정 노력하는 ‘절대인간’에겐 금메달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목표이리라.
김연아의 한마디가 이번 올림픽에서 긍정의 극한을 보여주었다면 ‘망발’의 끝을 보여준 경우도 있다. 여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에서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한국 박승희의 엉덩이를 붙잡으려 손을 앞으로 쭉 뻗은 중국 선수 판커신. ‘나쁜 손’의 진수를 보여준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논란이 되자 이렇게 말했다. “당시 중심을 잃었다. 우연히 그렇게 됐다. 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아, 이토록 몰상식한 발언이 또 있을까. 지하철에서 모르는 여성 엉덩이에 손바닥을 턱 붙인 남자가 “중심을 잃었다. 우연히 그렇게 됐다. 난 최선을 다했다”고 우겨대는 꼴이나 뭐가 다른가 말이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살다 보면 임팩트 있는 한마디와 마주하게 된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은 임팩트 그 자체다. “애들 아빠 하는 모든 게 마음에 안 들거든요. 10년 전에 애들 아빠가 집도 날리고…. 지금껏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가면 갈수록 (남편이) 예쁘게 안 보여요. 그 사람은 집에 신경을 안 쓰거든요. 기도하는 법을 알려 주세요”라는 중년 여인의 질문에 법륜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기도고 뭐고 없어. 처방이 없어. 나도 답이 없다니까. 얼마나 답답한 여자면 내가 답이 없다고 하겠어. 자기가 답답한 여자라는 걸 먼저 알아야 한다니까.”
아, 모든 고민의 해법은 알고 보면 자기 내면에 있음을 갈파하는 것이리라.
요즘 아침 라디오방송에서 연애 고민상담을 해주는 방송인 홍석천도 ‘즉문즉설’ 부문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준이다. “멋진 남자와 얼마 전 첫 만남을 가졌는데 그 남자가 ‘다음에 만나면 스키 타는 법을 가르쳐주겠다. 꼭 함께 스키 타러 가자’고 약속해 놓고는 이상하게도 연락이 없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 물어온 30대 여성에게 홍석천은 잘라 답했다. “늙어서 그래.”
임팩트 있는 간판도 있다. ‘완전게판’(게 요리 전문점), ‘한우짱’(소고기 전문점)도 보는 순간 나의 심장에 박히고만 가게 이름. 심지어 ‘파워패션’이라는 여성복 매장 이름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TV 드라마에선 뭐니 뭐니 해도 ‘추노’가 꼽힌다. 대사는 한마디 한마디가 충격이다.
“둘이 같이 달리고 있는 것 아나?”(송태하·오지호 분) “예전에도 같이 달렸다.”(이대길·장혁 분) “우리가 벗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송태하) “나는 노비 것들과는 친구 안 한다.”(이대길) “아직도 나를 노비로 생각하는가?”(송태하) “세상에 매여 있는 것들은 말이야, 다 노비라는 말씀이지.”(이대길)
그렇다. 세상에 매이는 한 우리는 노비와 진배없다. 알고 보면, 요즘 소위 ‘인생 멘토’라며 강의하고 떼돈 버는 인물들이 주장하는 바의 요체가 바로 ‘세상에 매이지 말라. 너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300만 원 이하로는 절대 강의하지 않습니다”라며 강의 청탁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한 인생 멘토의 경우는 어떤가. 정작 자신의 욕망으로부턴 그 자신은 자유로울까. 하긴, 노후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중장년에게 “노후를 준비하라”고 주장하며 책 쓰고 강의해 자신의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사람도 있으니….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희대의 바람둥이 ‘성기’(류승룡)의 대사도 정말 임팩트 있다. 그는 “난 우연을 믿지 않는다”며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 유부녀 ‘정인’(임수정)에게 이런 한마디를 던져 그녀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세상엔 두 종류의 여자가 있지. 우연을 믿는 여자와 믿지 않는 척하는 여자.”
최근 내가 본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대사는 ‘수상한 그녀’에 나온다. 연령대별 여성을 ‘공(球)’에 비유하는 이런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10대 여성은 축구공. 여러 남성이 서로 빼앗으려고 달려들지. 20대 여성은 럭비공이야. 가지면 놓치지 않으려고 전력질주하지. 30대 여성은 탁구공. 한두 명 정도가 주시하지만 그래도 집중력을 잃지 않지. 그 이후는 골프공. 멀리 보내버리려고 애쓰기만 한다고.”
아, 이건 절대로 여성 비하가 아니다. 다만 800만 가까운 관객이 본 초히트 영화 속 대사일 뿐. 만약 필자를 욕하고 싶은 여성분들이라면 유오성 주연의 영화 ‘반가운 살인자’에 나오는 임팩트 있는 이 대사로 제게 퍼부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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