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한창 정부조직법을 만들던 때, 한 친박 핵심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특임장관실을 없애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이유는 예상외였다. 특임장관실이라는 조직이 있어야 예산을 받을 수 있어 그 돈으로 정치권과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는 “특임장관실을 없애면 청와대에서 돈이 없어서 정치권 사람들 못 만난다는 이야기가 반드시 나올 거다. 국정홍보처를 없앴더니 당장 이명박 정부 때 홍보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청와대 예산만으로는 정무활동 못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특임장관실을 폐지했고 그의 예상은 상당 부분 맞아떨어졌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 같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청와대가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 정치인들 주머니에 돈을 꽂아줬던 시절이 있었다. 청와대 금고에 돈이 쌓여 있었다. 기업들이 바친 비자금도 있지만 출처가 필요 없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매달 청와대에 돈을 넣어줬다고 한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청와대는 참 안쓰러운 수준이다. 수석이나 비서관 중에는 한 달에 몇백만 원씩 사비를 들여 외부 정치·언론·학계 인사들을 만나는 이들이 꽤 많다.
박준우 대통령정무수석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경조사에 화환은 일절 보내지 않고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주광덕 정무비서관은 업무용 차가 나오지 않아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국회에 다닌다. 비서관급이 업무추진비로 쓸 수 있는 카드의 한도는 월 100만 원 정도. 밥 사고 술 사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한 청와대 직원은 “청와대라는 지위 때문에 누구를 만나도 밥을 사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직원이 밥을 얻어먹는 것 자체가 감찰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만나자고 하면 솔직히 비용 때문에 겁난다”고 털어놓았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여러 번 정무장관 부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물론 최 원내대표가 청와대 정무활동에 돈을 대주기 위해 제안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정무장관이 부활하면 금전적으로도 여유로워질 거라는 기대감도 비치고 있다.
청와대 직원들이 출입하는 비서동 앞 ‘연풍문’ 2층에는 커피숍이 있다. 그 커피숍은 요즘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청와대 직원들을 만나러 온 민원인도 많고 그곳에 마련된 세미나실에서 외부 사람들과 회의도 많이 열린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외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생긴 것이다.
청와대 사람들이 부족한 돈 때문에 정무활동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우리 사회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자 자화상이다. 그래서 돈의 유혹에 더 쉽게 흔들릴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조직을 늘리는 쉬운 길보다는 돈 들이지 않고 소통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이제는 정치권도 청와대 사람들 돈 없는 것 알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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