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크루그먼이 뉴욕시립대로 가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4일 03시 00분


워싱턴 특파원 시절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프린스턴대 캠퍼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고풍스러운 대학 건물은 고즈넉한 중세 유럽의 도시처럼 아름다웠다. 카네기 호수를 지나면 골프장까지 교내에 있다. 지난해 프린스턴대에 아들을 입학시킨 한 금융회사 사장은 “학비 5만 달러에 기숙사비까지 합치면 연 7만 달러를 웃돌지만 나도 이런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더라”고 했다.

▷프린스턴은 특히 경제학에서 수위(首位)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냈고 경제학 교과서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했다. 버냉키는 작년 이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프린스턴대 같은) 사립 명문대에 다니는 건 매년 최고급 캐딜락을 구입해서 절벽으로 처박아 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지만 프린스턴의 명성은 떨어지지 않았다.

▷인근 뉴욕 주에 있는 뉴욕시립대(CUNY)는 첫 주일 미국대사였던 타운센드 해리스가 1847년 무상 고등교육을 위해 설립했다. 첫해 신입생은 143명으로 작게 시작했지만 지난해 재학생이 27만여 명이다. 뉴욕 시와 인근에 24개 캠퍼스를 갖고 있다. 석사, 박사 과정에 노벨상 수상자도 10명이나 되지만 캠퍼스는 관공서 건물처럼 실용적이다. 전형적인 미국의 커뮤니티 칼리지다.

▷뉴욕타임스에 격주로 기명 칼럼을 쓰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가 내년 8월 CUNY로 자리를 옮긴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탄 크루그먼이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CUNY로 이적하는 것은 대학 간판을 중시하는 한국에선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진보적 경제학자답게 이 대학 룩셈부르크소득연구센터에서 소득불평등과 분배정의를 연구할 계획이다. 자신의 연구주제를 위해선 아이비리그보다 해당 자료가 많은 커뮤니티 칼리지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버냉키는 “직업을 선택할 때 일에 대한 열정이 아닌 돈을 기준으로 하는 건 불행의 첩경”이라고 했다. 입만 진보적인 국내 일부 경제학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크루그먼이 보여주고 있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프린스턴대#뉴욕시립대#폴 크루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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