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근혜노믹스’도 남이 써준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5일 03시 00분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거짓말 못하는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인데 ‘당선되면 어르신 여러분께 한 달에 20만 원씩 드리겠다’고 참모들이 써준 공약을 그대로 읽었다. 그래서 노인들 표가 많이 나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강연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이 여러 해석을 낳으며 논란이 되자 대통령의 복지정책 교사였던 안종범 의원은 “대통령은 기초연금 전문가다. 써준 것을 읽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수습에 나섰다. 기초연금은 그렇다 치자. ‘근혜노믹스’라 불리는 경제정책은 어떨까. 정책의 초점이 대선, 취임식, 취임 1년 후 계속 변하는 걸 보면서 ‘남이 써준 걸 그대로 읽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2012년 8월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박 대통령이 가장 강조한 것은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이었다. “국가의 성장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저는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는 국민행복의 첫걸음”이라면서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를 중심으로 국민행복 플랜을 짜겠다”고 했다.

그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경제가 매년 성장한다는데 내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지고, 나라 경제는 세계 10위권으로 부유해졌는데 서울 지하 단칸방에선 가난을 비관한 사람들이 동반자살을 한다.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정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나”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이런 시대정신을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예리하게 잡아냈고, ‘집토끼’는 물론 ‘산토끼’까지 끌어들여 51.6% 득표로 당선됐다.

새로 구성된 경제팀은 과거와 같은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내놓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경제운용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랬던 경제정책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확 달라졌다. 박 대통령은 474비전(잠재성장률 4%대,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을 내놨다.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을 연상시킨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는 공공부문 개혁과 규제 완화, 창업 지원이 강조됐다. 과거 정부와 뭐가 다른지 의아하다.

집권 후 경기침체가 나타나고 파이가 넉넉지 않다면 구조개혁과 파이 나누기만 고집할 수는 없다. 투자를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규제를 손봐야 한다. 복지정책을 펴려면 튼튼한 재정이 기본이니 공공부문 부채도 적극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기업 부채가 급증한 이유는 주로 정부의 잘못된 국책사업 때문이다. 이를 공기업의 과도한 복리후생 때문이라고 몰아갈 수는 없다. 무엇보다 ‘국가가 아닌 국민 중심의 경제운용’ 정책은 어디 갔는지 궁금하다.

경제민주화 공약엔 기업 활동만 옥죄는 나쁜 규제도 있고, 급격한 변화는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국민 합의를 바탕으로 조심스레 할 일이지만 방향을 잃으면 안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저서 ‘불평등의 대가’에서 “미국의 정치 경제 시스템이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킨다”고 지적하고 제도를 고치라고 한다. 그가 제안하는 정책은 “대기업 보조금 축소, 금융규제 강화, 세금의 누진성 강화, 근로자 단체행동 지원, 사회보장 강화” 등이다. 성장의 과실이 일부에만 돌아가고, 이런 불평등이 성장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는 진단은 부자들의 클럽인 다보스포럼에서도 나왔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 대통령은 정책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를 수도 있다. 다만 주요 정책 목표는 직접 챙겨야 한다. 박 대통령이 “성장률보다 민생”이라던 초심을 잃지 말기 바란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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