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이나 장관 중에 월세 살아본 사람이 없는 모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6일 03시 00분


정부가 전월세 대책인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지 1주일 만에 보완책을 내놨다. 월세 세입자에게 소득공제를 해줌으로써 부담을 줄여준다는 대책이 나오자 지금까지 세금을 내지 않던 집주인들이 집을 팔거나 다시 전세로 바꿀 움직임을 보였다. 정책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본보는 ‘월세 세입자 보호한다며 세수(稅收)늘리기 정책 먹혀들까’라는 제목의 사설(2월 27일자)로 정부의 외눈박이 정책을 지적한 바 있다.

소득 있는 곳에는 당연히 세금을 매겨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지 않던 세금을 갑자기 내라고 하면 조세 저항과 시장 왜곡이 심해질 수 있다. 특히 은퇴한 고령자들은 월세 소득에 대한 세금은 물론이고, 건강보험료나 국민연금 부담금이 갑자기 늘어나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번 보완책의 핵심은 영세 임대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2016년으로 미루고, 임대소득 공제를 신설해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는 내용이다. 전세 소득자에게도 세금을 물려 월세 소득자와 형평을 맞췄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과세를 정상화하는 측면에서 올바른 방향이라 하더라도 시장이 불안해한다면 시장을 안심시킬 수 있도록 정책의 타이밍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책 수정 배경을 밝혔다. 부동산 시장은 1주일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을 왜 정부만 뒤늦게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대통령이나 장관 중에 월세 살아본 사람이 없는 모양”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8월 “아프지 않게 털을 뽑겠다”며 발표한 세법 개정안이 봉급생활자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가 나온 기억이 생생한데도 이번에 아무런 교훈이 되지 못했다. 이번 전월세 대책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 과제 가운데 첫 번째인 게 이 모양이다.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고치는 것이 낫다. 그러나 보완책이 새로운 세금에 대한 부동산 시장의 공포를 얼마나 누그러뜨릴지는 의문이다. 벌써부터 추가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월세 대책의 혜택을 보는 사람은 연 소득 3000만∼7000만 원의 근로자다. 연봉이 2000만 원 미만이어서 세금조차 못 낼 정도로 생활이 어려운 월세 세입자는 해당이 안 된다. 이들을 위한 지원책도 내놓아야 한다. 아울러 당장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전세 집주인에 대해 과세가 이뤄지는 문제점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월세#전세#세금#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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