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는 티격태격하기 일쑤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12월 7일 결혼식을 치르기 전까지 크고 작은 다툼이 잦았다. 살림살이 준비부터 장래 계획까지 이유도 가지가지였다.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의견 일치에 이른 것도 있었다. 바로 자녀 교육이었다.
집사람은 이른바 ‘방목형’ 교육을 원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삶’을 주겠다는 것. 물론 자신의 마음속에는 ‘아이에 얽매이지 않고 직장생활을 계속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강남 8학군 ‘치맛바람’에 나름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지금에야 고백하건대 아이를 수많은 학원으로 내돌릴 만한 경제적 자신감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서로 이유는 달랐지만 자녀 교육에 있어서만큼 집사람과 함께 ‘말뚝귀(귀에 말뚝을 박은 듯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가 되고자 다짐했다.
말뚝귀가 ‘팔랑귀(귀가 팔랑거릴 정도로 얇아 남의 말을 쉽게 듣는 사람)’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아이가 만 세 살이 되기도 전 집사람은 한글 강사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유치원에 입학하려면 한글 다 깨쳐야 돼요. 요즘은 유치원에서 한글 안 가르쳐 줘요.” 이웃집 엄마의 ‘진심 어린’ 충고에 며칠간 고민한 결과였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떨떠름했지만 ‘우리말 우리글은 빨리 배울수록 좋다’며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다.
일단 팔랑거리기 시작한 귀는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이사 가는 곳마다 친절한 이웃들은 어찌나 많은지…. “영어는 기본이고 요즘은 중국어가 대세야”, “○○ 엄마는 피아노 안 시켜? 남자아이도 악기 하나 해야 하는데”, “집중력 키우는 데는 바둑이 최고야”…. 덕분에 올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간 큰아이는 모두 7종의 ‘과외’ 교육(방과후수업 포함)을 받고 있다.
지난해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학 전 아동의 71%가 교과 사교육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초등생 사교육비는 전년도에 비해 5.9%나 늘었다. 중고교생은 줄었는데 초등생만 유독 증가했다. 물론 ‘선행 학습’에 일찌감치 확신을 가진 부모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팔랑귀 부모가 많기 때문이야”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오히려 이제는 주체적인 팔랑귀로 거듭나고 있다. 둘째 아이(4)의 영어 학습지를 계약하는 집사람에게 “중국어도 시켜볼까? 영어랑 같이 하면 더 좋다는데”라며 조언을 건넬 정도다.
아! 자녀 교육 문제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말뚝귀를 유지하는 부분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틈날 때마다 외치는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부담 완화’ ‘선행학습 철폐’ 같은 얘기들에 대한 자세다. 이와 관련해 어떤 강력한 내용이 나와도 ‘불신의 말뚝귀’가 될 자신이 있다. 정부의 오락가락 교육정책에 귀를 팔랑거렸다가 낭패를 본 이웃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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