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인해]박 대통령, 위안부 문제 해결할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7일 03시 00분


군위안부 강제연행 인정한 고노담화마저 바꾸려는 아베
남북한 위안부 할머니들 만나 여성인권문제 공조하게 하자
역사적 사실 외면하는 日정부… 더 이상 무례한 행동 못하도록
남북한이 함께 일침을 날리자

안인해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인해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갈 데까지 가야 한다.” 일본 전문가에게 악화일로로 치닫는 한일관계의 해법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일본 내 우경화 여론의 지지를 업고 극우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은 한국 입장에서 보면 ‘막무가내’다. 지난해 말 미국을 비롯해 중국 한국이 나서 경고했지만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말았다. 역사왜곡의 현장에 참배하지 말라는 요구는 묵살됐다. 한일관계의 실마리를 풀라는 미국의 호소도 공허하게 흩어지고 있다. 어쩌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버린 건지도 모른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무라야마 담화’(1995년)로 이어진 ‘고노 담화’(1993년)의 수정이 필요한지 검증하겠다고 했다. 자신들이 선택했던 총리와 제2인자를 부정하겠다는 것이다. ‘조선 여인들이 가난해서 돈벌이하기 위해서 나섰다’거나 ‘군대 위안부가 우리만 있었는가’라고 항변한다. 그리하여 한국 위안부 할머니 16인의 흥분한 증언이 과장됐고, 정부 차원의 위안부 동원을 증빙할 문서가 없었다고 하려는 것이다. 병영에서 이뤄진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들인 ‘현장문서’가 속속들이 들춰지고 있다. 그런데도 무엇을 검증하겠다는 것인가. 일본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3월이면 일제강점하에서 독립만세가 울려 퍼지던 함성을 되새긴다. 3·1절을 맞아 일본군의 만행을 곱씹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안위를 걱정하게 된다. 그럼에도 일본의 고위 인사는 군위안부가 ‘날조된 사실’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군위안부 강제연행과 일본군과 관헌이 개입한 사실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해 군위안부를 ‘살아있는 현재 문제’로 제기하고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1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토의에서도 ‘위안부(comfort women)’ ‘강제 성 노예(enforced sex slave)’라는 표현이 거론된 바 있었다. 올바른 역사인식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 등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일본 정부는 다음 달 소비세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현행 5%에서 8%로 오른다. 3%포인트를 크게 느끼는 일본인들이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모습이 일본 TV에 방영되고 있다. 평소 위기대처 능력은 감탄할 정도로 차분하다는 일본인이지만 세금 인상으로 직접 체감하게 될 물가에 대한 걱정은 여느 국민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일본의 역대 정부는 세금 인상을 꺼내들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아 정권이 바뀐 경험을 하였다. 아베 정권도 소비세 인상에 따른 지지율 하락에 고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외교 현안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러시아가 관할하고 있는 북방영토를 반환받고자 한다. 중국과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로, 한국과는 독도 영유권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둘째, 유엔에서 미국에 이어 제2위의 분담금을 내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에 독일과 더불어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꾀하고 있다. 셋째, 북-일 관계 정상화를 통한 외교적 성과를 필요로 한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북한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수 있다. 아베 정부는 지지율 하락을 피하기 위해 세 가지 현안 중 비교적 현실성이 있는 북-일관계 개선에 나서고자 할 것이다.

1992년 9월 여성대표단의 일원으로 방북한 나는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접견한 적이 있다. 민간인으로서는 최초로 판문점을 통과해 평양에 가게 되었는데 북한 여성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당시 김일성 주석 덕분에 북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했지만 할머니들의 증언은 피눈물로 범벅되었다. 치마를 걷고 배를 가른 검도자국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그 잔혹상을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리고 있을 남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만날 수 있게 하자. 그래서 서로의 기억을 확인하고 조금이나마 상처를 보듬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자. 이산가족 상봉과 더불어 처절한 여성인권문제에 남북한이 한마음이 되어 공조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향해 남북한이 함께 일침을 날리자. 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더이상 끔찍하게 무례하지 않도록 하자. 한국의 여성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안인해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ahnyinha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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