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의 간첩 혐의 사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의 협조자인 김모 씨가 유서를 쓰고 자살을 기도했다. 김 씨는 중국 싼허(三合)변방검사참(세관) 발행 문서를 위조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탈북자인 그는 중국 국적을 갖고 있는 점을 활용해 국정원으로부터 매월 월급을 받고 사안별로 사례비를 따로 받는 협조자로 활동했다.
국정원 측은 “위조인 줄 알았으면 김 씨의 신원을 밝혀 검찰 조사에 협조하도록 했겠느냐”며 위조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씨가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는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 원을 국정원에서 받으라”는 내용이 있다. 정보기관은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해야 할 경우 외부인을 통해 해결하는 어두운 유혹에 빠지기 쉽다. 김 씨가 가져오는 서류가 가짜인 줄 알면서도 국정원에서 모른 체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씨가 위조한 것은 유 씨의 출입경 기록 ‘出(출국)-入(입국)-入-入’이 작업자의 착오일 가능성이 크다는 싼허변방검사참의 설명 자료였다. 이 기록은 유 씨의 변론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법원에 제출했다. 출입경 기록이라면 출입이 번갈아 나와야 정상이다. 국정원이 제출한 유 씨의 출입경 기록에는 ‘出-入-出-入’으로 돼 있다. 어느 쪽의 출입경 기록이 맞는지와는 별도로, 김 씨의 싼허변방검사참 설명 자료는 위조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은 한중 간 사법 공조 체제가 부실한 데도 원인이 있다. 중국 정부가 한국 사법기관의 요청에 출입경 기록만 확인해줘도 국정원에서 무리한 증거 수집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서 위조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다. 위조된 문서가 사법절차를 훼손하는 것을 국가기관이 방임했다면 국기문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은 증거 조작을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검찰은 국정원으로부터 송치 받은 사건을 검토해 법률 적용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고 기소해야 한다. 그런데도 검찰은 국정원이 넘겨주는 자료를 받아서 법원에 전달하는 우편배달부 역할을 하고 말았다. 검찰은 담당 검사의 직무 태만을 포함해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유 씨는 남재준 국정원장 취임 직전에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위조문서는 유 씨가 지난해 8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에 ‘남재준 국정원’이 항소심에 임하면서 제출된 것이다. 남 원장이 민주화 이후 첫 내란음모죄로 인정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을 적시에 처리한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국정원 개혁에 소극적이었다가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남 원장이 증거 조작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물러나야 마땅하다. 몰랐다 해도 이에 상응하는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전 정권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이번 사건은 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과 협력해 국회의 국정원 개혁 논의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국정원은 ‘셀프 개혁’이 제대로 안 된 것으로 드러난 이상 더 많은 민주적 통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