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反세계화-反시장경제… 너무나 닮았던 차베스와 노무현
지금 베네수엘라는 경제파탄… 그래도 좌파는 포퓰리즘 외쳐
서울교육감 출사표 조희연, 경기도지사 예상후보 김상곤
“차베스 배우자” 신념 그대로인가
‘참 이상하다. 지구 반대편에 참여민주주의를 유독 강조하는 나라가 또 있다니.’
10년 전 나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차비스타-노사모를 뒷심 삼아 헌법을 흔들고, 법치와 사유재산권 언론자유를 외면한다며 ‘민주주의가 울고 있다’고 썼다. 차베스는 작년 3월 5일 숨지기까지 14년 독재하며 ‘21세기 사회주의’를 외친 전형적 포퓰리스트 대통령이었다.
물론 당시 좌파는 동의하지 않았다. 진보적 석학으로 꼽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두 정부는 기묘하게 비슷하지만 노 대통령은 일관된 정책으로 추진하지 아니하였다”고 썼듯(2004년), 좌파는 노무현이 신자유주의에 매달려 차베스 같은 개혁을 못한다고 안달이었다.
정연주 사장의 KBS는 2006년 주말 황금시간대 ‘일요스페셜’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이라는 타이틀로 반(反)세계화·반(反)시장경제를 우리가 가야 할 길처럼 선전했다. 이 프로를 만든 이강택 PD는 “그간 한국사회에 잘못 알려져 왔던 많은 사실들을 전달한 것”이라며 기세등등했다.
6월 항쟁 20주년이었던 2007년 좌파진영은 아예 ‘차베스 붐’을 일으켰다. 민주노동당 주최 대선전략 토론회에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민중주의 전략으로 성과를 거둔 차베스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포럼’은 차베스의 영상메시지를 상영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등 정치사회 토론회를 열었다. 공동조직위원장이 지금 안철수 의원과 손잡고 경기도지사에 출마하겠다는 김상곤 한신대 교수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그때 차베스를 떠받들던 사람들이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보고 뭐라고 할 것인지.
지난달 여대생 강간미수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에 벌써 20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물가상승률 56.2%에 생활필수품 태부족, 부정부패와 범죄 급증에 참다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국제사회에선 제2의 우크라이나가 될까 우려하는 상태다.
그래도 국내 좌파는 “차베스 덕분에 빈곤층이 줄었다”며 그의 치적을 칭송하고 있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 원자재 붐으로 남미 전체에서 빈곤이 크게 줄어든 사실은 모르는 척 생략한다. 베네수엘라 빈곤층이 2002년 전체 인구 중 49%에서 2011년 30%로 준 반면 이보다 빈곤층이 더 많던 페루는 54%에서 28%로 줄였음을 빼놓는 식이다.
차베스는 오일 붐으로 벌어들인 부(富)를 인프라와 교육에 투자해 성장과 분배의 기반을 탄탄히 하지 못하고 허비했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적했다. 빈민층 위한다며 대학까지 무작정 늘린 무상교육, 노동자 위한다며 해고를 불가능하게 만든 노동법과 가격통제 등 잘못된 정책이 이 나라의 경쟁력을 148개국 중 134위로 추락시켰다는 게 사실보도다. 진보적 신문인 영국 가디언은 “유럽 좌파들은 베네수엘라가 자기들 이데올로기에 맞는 정책을 펴왔기에 아무 비판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우리 편 감싸기는 본능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처럼 태평할 수 없다. 차베스를 닮았거나 배우자던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선거에서 진보진영 단일화 출사표를 던진 조희연은 “차베스를 배워야 한다”던 신념이 바뀌었는지, 그대로 교육행정에 구현할 것인지 밝히기 바란다.
김상곤은 2008년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총장 시절 베네수엘라를 방문했고, 2010년에도 “우리 대학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참세상을 열어갈 주체를 키워내고자 출범했다”는 총장 인사말을 이 대학 홈페이지에 올렸다(경인일보 보도). 이번엔 경기도를 노동자가 주인 되는 참세상으로 만들 포부인지 말해야 한다.
김우창과 이강택은 노무현 이후 정권을 잡을 뻔했던 친노 세력이 차베스식 개혁을 일관되게 해내야 한다고 믿고 있는지 고견을 밝혀주시면 대단히 고맙겠다.
그래도 이들은 차베스 숭배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던 사람들이다. 차베스가 앞장섰고 결국 나라를 거덜 냈던 사회적 소유화, 반값정책, 협동조합, 주민평의회와 공동체 같은 제도를 밀어붙이는 세력이 전혀 차베스와 상관없는 척, 착한 얼굴로 국민을 미혹시키고 있다.
모두가 잘 사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는 이상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똑바로 봐야 한다. 시대착오적 이념, 비틀린 정책은 10년도 안 돼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음을 차베스 귀신이 떠도는 베네수엘라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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