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랄라! 누가 이렇게 흐벅지게 한상 차려놓았당가. 막걸리 안주상이 거나하다. 연둣빛 봄나물에 울긋불긋 온갖 안주가 차고 넘친다. 그대로 아지랑아지랑 ‘봄 들판’이요, 자글자글 차란차란 ‘봄 바다’이다. 봄이 그린 한 폭의 그림이요, 한 줌의 바람이 수놓은 풋바다라. 꽃안주, 꽃주막에 어깨춤이 들썩들썩, ‘꽃심 고을’(전주)의 꽃잔치는 이미 막걸리촌에서 시끌벅적하다.
‘꽃열매, 꽃안주를 먹고 나니 꽃마음 만발하여, 춤을 춰도 꽃춤이요, 노래해도 꽃노래라’(‘혼불’의 최명희 작가·1947∼1998)
전주막걸리는 몸에 ‘앵겨(안겨)’ 온다. 쩍쩍 입에 달라붙는다. 혓바닥에 배어들어 한동안 뱅뱅 감돈다. 뭔가 못내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 맛, 뭔가 척척 입안에 감겨 대롱대롱 매달려 앙탈을 부리는 맛, 뭔가 엉킨 실타래가 끝내 풀리지 않은 듯 아득하게 그리움이 사무치는 맛. 전주사람들은 그것을 ‘개미(게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늘(숙성)이 있다’고도 한다. 음식에 ‘시김새(삭힘)’가 있다는 말이다.
사실 전주막걸리라고 뭐가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 막걸리가 ‘꽃 안주’와 한판 어우러져, 느닷없이 아쟁 소리처럼 ‘에∼앵♬ 에에∼엥♩♪’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듯, 가슴 철렁 속수무책으로 둥글고 담쑥하게 ‘앵겨 오는데…’ 아으, 다롱디리! 동동다리!
그 산수유 꽃그늘만큼이나 서늘하고 따사롭고 꼬스름하고 달큰시큼한 맛. 벗들과 동아줄처럼 질긴 그 맛에 어찔어찔 취해서, 되지도 않는 시시껄렁한 수다나 풀다가, 찧고 까불고 낄낄대며 끝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어쩌고 하며 ‘봄날은 속절없이 가버리는’ 것이다.
전주막걸리집들은 술값만 받는다. 안주는 아무리 먹어도 공짜다. 막걸리는 3통들이 첫 한 주전자 값이 2만 원. 두 번째 주전자부터는 1만5000∼1만7000원씩 받는다. 기본 안주는 보통 20가지가 넘는다. 한상 가득도 모자라 그릇 위에 그릇이 층을 이룬다. 여기에 막걸리 한 주전자씩 추가할 때마다 특별안주가 보태진다. 세 주전자쯤 마시면 마즙, 전복, 간장게장, 홍어삼합 같은 게 나온다. 무슨 안주가 또 나올까? 술꾼들은 안달한다. “에라, 모르겠다! 한 주전자 더!”
술꾼들은 보통 막걸리 찌꺼기(하얗게 가라앉은 부분)는 먹지 않는다. 윗부분의 ‘맑은 술’만 마신다. 너무 배불러 맛있는 안주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날 숙취가 덜하기도 하다. 전주막걸리집은 이 골목 저 골목 돌담 아래 채송화 꽃처럼 쪼르르 구물구물 모여 있다. 삼천동 30여 곳, 서신동 15여 곳, 경원동, 평화동, 효자동 4∼7곳 등 모두 100곳이 넘는다.
주인장은 쉰아홉의 동갑내기 최명환, 장유자 씨 부부. 장 씨가 군복무 중인 최 씨에게 3년 동안 매달 50통씩 편지를 보내며 맺어진 ‘진한 인연’이다. 남편 최 씨가 사업하다가 폭삭 망했고, 그 이후 10년 동안 주막집 운영으로 자식들(1남 1녀)을 거뜬히 키워냈다. 부인 장 씨의 꿈은 가수였다. 지금도 기분 나면 김연숙의 ‘초연’을 절절, 먹먹하게 술청이 흐느끼듯 불러 젖힌다.
‘먼 산 부엉이 밤새워 울어대고/앞 냇물소리 가슴을 적실 때/나는 사랑이 무언 줄 알았네/그러나 당신은 나를 두고 어디 갔나/아∼아∼아∼ 그대를 기다리네/돌아와요 내게 돌아와요’
막걸리는 개구리만큼 입이 크다. 단숨에 “쭈욱∼” 소리 내어 마셔댄다. 짐짓 한두 방울 턱밑으로 흘리는 거야 ‘기본 애교’. 꿀∼꺽 크르륵! 목울대가 출렁거린다. 목젖이 아프다. 술은 둥글게 젖어오고, 시나브로 스며든다. 잔물결이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사라져간다. 어찔어찔 아득하다. 아으 더러둥셩! 위 증즐가 태평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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