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조기 퇴직하고 전원생활 터를 물색하고 있는 K 씨(51·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푸념이다. 그는 강원과 충청지역을 점찍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땅값이 비싸 고민에 빠졌다.
K 씨는 왜 자신의 전원행(行)을 ‘귀촌’이라고 했을까? 귀농과 귀촌은 둘 다 주거지를 도시에서 시골(농촌)로 옮기는 것이지만 소득의 조달 방식이 다르다. 귀농은 생활에 필요한 소득의 대부분을 영농을 통해 조달하는 반면에 귀촌은 농업 이외의 부문 예컨대 연금, 이자, 임대소득이나 펜션, 체험시설 등의 운영을 통해 얻는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이런 귀농과 귀촌의 경계가 모호하다. 현재 귀농인이 되려면 법적으로 농업인의 자격만 갖추면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관련법상 농업인의 요건을 요약하면 1000m²(약 303평) 이상의 농지(비닐하우스 등 시설영농은 330m²=100평)에서 영농활동을 하는 자로, 농지원부(농업인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신분증’)에 등록하면 된다. 농사와 관련 없는 전원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귀촌일지라도, 집이 들어선 대지 외에 농지를 1000m² 이상 확보하면 농업인이 될 수 있고, 또한 귀농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K 씨가 작은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으로 일구고자 하는 땅의 크기는 1322(400평)∼1653m²(500평)이다. 따라서 K 씨는 농지원부에 등록하고 농업인이자 귀농인으로 전원의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 씨처럼 (퇴직했거나 사업을 접은 자연인 신분임에도) 자기 스스로를 귀촌이라고 단정 짓는 이가 의외로 많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귀농인구는 1만1220가구이지만 귀촌인구는 그보다 4568가구 더 많은 1만5788가구에 달했다. 이들 귀촌인 중 상당수는 K 씨와 같은 ‘자발적 귀촌’으로 추정된다.
이와 반대로, 귀농인구 1만1220가구 가운데 절반 이상은 엄밀하게 따져보면 ‘무늬만 귀농’일 뿐이지 실상은 귀촌인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무늬만 귀농’이 늘어나는 이유는 각종 귀농지원책이 주는 매력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가 진실(?)은 귀촌이지만 농업인의 자격을 갖춰 귀농으로 변신한 것이다.
실제로 농업인이자 귀농인에게 주는 혜택은 많다. 우선 전원생활의 물적 기반이 되는 땅과 집을 마련하는 데도 크게 유리하다. 농지와 임야 구입자금(한도 2억 원, 경·공매 취득도 포함)은 물론이고 전원주택 신축 및 매입자금(한도 4000만 원)도 사전 대출 지원한다(연리 3%·5년 거치 10년 분할 상환 조건). 심지어 이사비용까지 지원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업인이자 귀농인은 통상 귀촌하는 외지인(도시인)들이 주로 매입하는 관리지역 땅보다 크게 저렴한 농지(농업진흥구역)와 임야(보전산지)를 사서, 그곳에 농업인에게만 혜택을 주는 농업인주택을 지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귀촌이라 하더라도 농업인, 귀농인에게 주는 이런 정부의 지원책을 잘만 활용하면 전원의 꿈을 좀 더 앞당길 수 있고, 이후 전원 연착륙도 한결 수월해진다. 이는 불법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농업정책이나 귀농·귀촌의 흐름에 비춰 볼 때 바람직한 방향이기도 하다.
정부는 농업·농촌을 단순한 1차산업(생산)이 아닌 2차산업(가공)과 3차산업(서비스)을 융·복합한 6차산업화 전략을 세우고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많은 귀농·귀촌 선배와 농업전문가들은 “일단 귀촌을 한 다음 2, 3년 정도 시골생활에 뿌리를 내린 뒤 귀농으로 전환하라”고 조언한다. 또 “애초 귀촌인도 향후 귀농을 접목해 높은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전원행을 준비하는 이들은 가능하다면 농업인이자 귀농인이 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때의 귀농인은 단순히 귀촌인에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귀농과 귀촌을 융·복합한 진화한 ‘귀농촌인’(반귀농·반귀촌인)을 의미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역시 획일적인 구분으로 귀농 지원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귀촌이 압도적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농업·농촌=6차산업’이라는 정책 목표에도 부합하는 ‘귀농촌’(반귀농·반귀촌)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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