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염전 노예 업주와 경찰 유착 없었다”는 발표 믿을 수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2일 03시 00분


경찰청이 사회적 약자의 인권 침해에 대해 특별 단속을 실시한 결과를 보면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인권 유린이 가능했을까 의문이 생길 정도로 심각하다. 염전 업주나 농장주들은 지적장애인과 노숙인들을 직업소개업자를 통해 사들여 소금 생산과 벼농사, 공사장 막일을 시켰다. 때때로 각목으로 때리며 도망가지 못하게 감금했다. 피해자들은 가족이 없어 실종 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거나 정신지체를 앓고 있었다. 업주들은 이 점을 악용해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2014년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노예 12년’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번 단속은 지난달 6일 전남 신안군 외딴섬 염전에서 지적장애인 채모 씨를 노예처럼 부린 염전 주인과 채 씨를 팔아넘긴 직업소개소 직원이 경찰에 붙잡히며 시작됐다. 채 씨가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았더라면 드러나지 않을 뻔했다. 이번에 구출된 22명의 염전 노예도 채 씨와 다를 바 없는 인권 유린을 당했다. 붙잡힌 업주들은 반성하기는커녕 경찰에서 “오갈 데 없는 애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용돈도 줬는데 무슨 잘못이냐”고 따졌다. 기막힌 적반하장이다.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이 권위주의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노숙인과 지적장애인은 사회적 약자 가운데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다. 우리 사회가 최우선적으로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다.

경찰청은 일각에서 제기됐던 지역 경찰과 염전 업주들의 유착 의혹에 대해 “유착은 없었다”고 발표했으나 이번 단속 이후 목포경찰서 산하 도서파출소 소속 경찰 87명 가운데 74명을 교체했다. 순찰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지만 지역 경찰과 업주들이 한통속이었다는 피해자 증언을 감안하면 경찰이 철저하게 조사했는지 의심스럽다.

피해자 중에는 지적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다수 포함돼 있어 경찰에게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올해 2월 국회 답변에서 “염전 노예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해 일회성 조사만으로 어물쩍 끝내고 넘겨서는 안 된다. 경찰 보건복지부 등 관계 당국이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해 상시적으로 ‘염전 노예’의 근절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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