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고 말했다. 어제는 “대통령이 왜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하느냐고 하는데 조금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불타는 애국심’과 ‘사생결단’을 강조했다.
관료사회의 지지부진한 규제 완화에 답답해하는 대통령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는 표현은 ‘미제(美帝)는 우리의 원쑤’라는 북한의 섬뜩한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인수위 시절 ‘손톱 밑 가시’에 규제를 비유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다. ‘쳐부술 원수’는 대통령에게 어울리는 격조 있는 표현은 아니다. 박 대통령의 말에서 갑자기 이질감을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5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진도개 정신으로 업무를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끝장을 볼 각오로 일하라는 뜻이겠지만 살벌한 표현이다. 재벌 총수가 사장단 회의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나 할까. 나랏일은 사기업의 일과 달리 공공성이 중요하다. 일을 하다가도 공공성에 어긋나면 돌아설 수 있어야 한다. 국가정보원의 증거 조작 의혹 사건도 진도개 정신으로만 달리다 벌어진 일일 수 있다. 뜻은 단호해도 여지가 있는 표현을 사용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하면 된다’는 휘호를 즐겨 썼다. 황무지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시절, 한국인을 하나로 모아준 강한 정신의 표현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선거 유세 때 “당신 할 수 있어(You can do it)”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하면 된다’와 ‘당신 할 수 있어’라는 말은 같은 뜻이지만 후자가 현대인의 정서에 좀더 편하게 다가온다. 이것이 언어의 묘미다.
박 대통령은 절제되고도 적확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자질을 보여줬다. 일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통일은 대박’이란 말은 청소년도 이해할 만큼 의미를 잘 전달한 표현이다. 대통령의 비유는 국민 사이에 회자되는 법이다. 박 대통령이 “규제는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 암 덩어리”라고 말하자 민주당에서 곧바로 패러디해 “국정원이 나라의 암 덩어리”라고 받아쳤을 정도다. 대통령의 말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무릎을 치게 할 정도의 통찰력이나 감각을 보여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