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하는 장학관 친구를 한 달 전쯤 만났다. 올해부터 방과후 돌봄 교육을 초등 1, 2학년 희망자 모두에게 확대해야 하는데 예산이 모자라 다른 예산을 돌려 배정해야 할 처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각 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취학 전 아동 누리과정을 5세에서 3, 4세까지로 확대하느라 이미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교육청은 돈이 없어 학교시설을 제때 개선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강사도 많이 해고했다. 올해는 명예퇴직을 원하는 교사들의 퇴직금을 줄 형편이 못돼 신임교사 발령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누리과정과 돌봄 교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으로 중앙정부가 도입한 것이다. 지자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똑같이 실시하는 것이다. 무상급식만 해도 지자체별로 결정한 것이고 예산도 지자체가 스스로 마련한다. 그러나 누리과정과 돌봄 교육은 중앙정부가 결정한 것이고 예산을 지자체에 지원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친구의 불만은 정부가 충분한 예산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들 공약을 실천한다는 생색만 내고 있다는 것이다.
뒷감당은 안중에도 없는 여야의 무상서비스 경쟁은 4년 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등 야권의 무상급식 공약에서 시작됐다. 이해찬 전 총리의 말처럼 이것은 보편적 복지를 팔기 위한 미끼 상품이었다. 그 미끼를 물어 누리과정 같은 전국적 서비스로 확대한 것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다. 그러나 무상급식이라는 첫 번째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서 누리과정 등 그 다음 단추가 모두 잘못 끼워지게 됐다.
무상급식과 일률적 누리과정 지원은 글로벌 관행이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복지에서는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프랑스를 보자. 난 2009년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면서 급식비로 1년에 약 500유로를 냈다. 내 소득은 중간 정도의 등급을 받았다. 최고 등급을 받으면 약 750유로를 내야 한다. 물론 최저 등급을 받으면 거의 내지 않는다.
프랑스의 급식비 구조는 빈곤층에는 매월 아동수당에다 무료에 가까운 급식을 제공하고, 중산층에는 매월 지급한 아동수당을 급식비로 대부분 환수해가고, 부유층에는 아동수당도 지급하지 않고 급식비도 모두 내게 하는 것이다. 교사는 급식비 청구서를 봉투에 담아 아이를 통해 학부모에게 전해주고, 학부모는 봉투에 수표를 넣어 아이를 통해 교사에게 보낸다. 차등적인 급식비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면 대부분의 프랑스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살아간다는 터무니없는 얘기가 된다. 이런 구조는 학교 급식만이 아니라 유치원과 어린이집 이용요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초중학교에서 누구에게도 급식비를 받지 않는다. 누리과정 지원비는 올해 1인당 22만 원으로 누구에게나 똑같이 준다. 현실적으로는 이 돈으로 다 감당이 안 돼서 2016년까지 30만 원으로 올리도록 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정의에 따르면 부유층과 중산층에는 안 받던 급식비를 받고 빈곤층은 당장이라도 돈을 더 낼 필요 없이 누리과정을 다니게 하는 것이 옳다.
무상으로 돌봄 교육을 받던 초등 3학년 이상 차상위계층 학생들이 앞으로 돈을 내야 한다는 보도를 얼마 전에 봤다. 돌봄 교육을 초등 1, 2학년 희망자 모두에게로 확대하면서 예산이 부족해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무상급식 도입 이후 첫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용감하고 책임 있는 지방선거 후보라면 잘못된 보편적 복지의 구조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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