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대학 보내달라고 데모했다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 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 사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해서 밥을 굶기로 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물물만 퍼 마시며 이삼일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논으로 가고 어머니는 밭 매러 가고 형들도 모르는 척 해가 지면 저희끼리 밥 먹고 불 끄고 자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밤 되면 식구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몰래 울 밖 자두나무에 올라가 자두를 따먹었다 동네가 다 나서도 서울 가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낮엔 굶고 밤으로는 자두로 배를 채웠다 내 딴엔 세상에 나와 처음 벌인 사투였는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빈속에 그렇게 날것만 먹으면 탈난다고 몰래 누룽지를 넣어주던 날 나는 스스로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자두야
1960년대의 한 농촌 소년 투쟁기가 가슴 짠하고 따뜻하게 펼쳐진다. 화자는 아들만 있는 집의 막내인 듯하다. 양 부모 건재하고 장성한 아들이 여럿인데, 공부도 잘했을 막내가 ‘사투’를 벌이며 소원하는 대학교에 보낼 형편이 안 된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당최 비빌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착했던 아이가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사날씩 집에 안 들어오기도’ 해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단식투쟁을 해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고학을 할 각오로 집을 떠나지 않은 것을 보니 화자는 독한 데 없는 순둥이였던가 보다. 어쨌든 대학교는 이쯤 열망하는 사람이 가야 하는 건데 공부에 뜻이 없고 집이 어려워도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대학에 다니는 오늘의 청소년도 가엾다.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화자가 누이 부르듯 ‘자두야’ 속삭이며 묻는다. 인생은 알 수 없죠. 그런데 빈속에 자두를 따 먹고 당신은 시를 낳았죠. 이상국의 시들은 진솔하고 따뜻하고 해맑다.(사족: 화자에게 누이가 있었다면 국면이 달라졌기 쉽다. 대개 누이들은 마음이 여리고 희생정신이 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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