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인정보 유출보다 무서운 금융당국의 사고 불감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9일 03시 00분


KB국민카드와 롯데카드, NH농협카드에서 8270만 건의 고객정보가 2차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올 초 1차로 유출된 개인정보와 같은 내용”이라고 했을 뿐 국민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1차 유출 때 카드와 통장을 바꾸려는 사람들로 금융회사 창구가 북새통이었던 데 비해 지금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모든 정보가 털렸는데 더 털린들 도리가 있겠느냐는 자포자기의 국민감정이다. 사회 전체가 ‘안전 불감증’에 걸려 대형 사고가 나도 그때뿐인 것처럼, 개인정보가 노출돼도 어쩔 수 없다는 ‘노출 불감증’에 걸린 듯하다. 금융당국과 정부에 대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바닥난 것이다.

검찰은 1월 초 1억400만 건의 유출 정보 가운데 시중에 팔린 것은 100만 건뿐이라고 했다.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추가 유출은 없다”며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더 조사해보니 범인들이 팔아치운 개인정보는 8270만 건이었다. 금융당국의 두 책임자는 앞으로 어떤 책임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폐지하는 문제까지 검토하겠다던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6·4지방선거 인천시장 출마를 위해 사표를 냈다. 사생결단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기는커녕, 책임지는 당국자가 없는 공백 상태다.

보안 및 데이터베이스 분야 전문가인 문송천 KAIST 교수는 “유출 정보 가운데 10분의 1만 적발됐다고 봐야 한다.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주민번호가 해커들의 손을 거쳐 적국으로 넘어갔다면 국방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박성훈 국가인권위원회 정보인권조사관은 “미국, 중국 심지어는 아일랜드 포털 사이트에도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설명과 활용법이 올라와 있다”며 “주민등록번호는 이제 전 세계의 공유재(公有財)라고 봐야 한다”고 한 토론회에서 지적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영주 민주당 의원은 “2차 추가 유출이 없다고 호언장담한 현오석 경제부총리, 황교안 법무부 장관,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국회 정무위 개최를 요구했다. 연일 터지는 개인정보 유출에 이용자들은 무감각해지고, 정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사고 불감증’ 사회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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