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원래 1973년에 맺은 한미원자력협정이 종료되는 날이다. 한미 양국이 종료시한을 2016년 3월로 두 해 미루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농축, 재처리 등을 목표로 시작했던 수차례의 개정 협상이 접점을 찾지 못하자 고육지책으로 협정 종료 시한을 늦추는 데 두 나라가 합의했다. 우리가 협상 시간을 벌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두 해가 더 흐른다고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까. 필자는 회의적이다.
첫째, 한미 간 원자력 협상은 더이상 공학(工學)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외교력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에 농축, 재처리를 허용하면 북한을 비핵화하려는 자국의 외교정책에 역행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또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글로벌 핵 비확산에 대한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둘째,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 비확산 신뢰가 유보적이다. 미국은 1970년대 주한미군 철수 등 한반도 주변 안보 상황이 변하자 한국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이후에도 미량이지만 핵물질을 ‘만진’ 기록이 드러났다. 그러다 보니 워싱턴 비확산론자들은 적어도 핵무기에 관한 한 남한이나 북한 모두 비슷한 멘털리티를 갖고 있지 않으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셋째, 농축과 재처리를 둘러싼 국내 원자력 학계와 산업계의 의견이 여전히 집약돼 있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이로 프로세싱’에 대한 주장들이다. 재처리 공법의 하나인 파이로 프로세싱에서는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이 분리되지 않기에 핵 확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우리 측 입장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국내 학계 일부에서도 파이로 공정에 회의적이다.
넷째, 원자력협정에 대한 동력의 약화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원자력협정에 대한 한미 양국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타결 의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오바마 정부가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원자력협정 개정 건이 점차 국가정책 어젠다에서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국가 에너지 차원에서 협상 결렬을 염두에 두고 대비책(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제라도 이번 협정 개정에서 파이로 프로세싱을 포함한 농축과 재처리 건을 미국이 우리의 요구안대로 수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정직하게 고해야 한다. 동시에 외교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관계기관은 미국의 이란 핵협상과 베트남 원자력협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선제적으로 알리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 임기 내에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면 정부 유관 부처부터 산업계, 학계를 아우르는 ‘스마트 원자력 총합외교’가 절실하다. 농축, 재처리란 단어가 지니는 함축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대통령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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