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감원 간부가 KT 자회사 대출사기범 뒤를 봐줬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0일 03시 00분


금융감독원의 중간 간부가 ‘KT ENS 거액 대출사기 사건’의 핵심 범인들과 유착해 그들을 비호한 사실이 드러났다. 금감원은 최근 직위 해제된 김모 팀장이 이번 사건의 주범인 엔에스쏘울 전모 대표, 중앙티앤씨 서모 대표 등과 9년 가까이 어울리면서 수억 원대의 이권(利權)을 챙긴 혐의를 적발해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는 올해 초 금감원이 사건 조사에 착수하자 전 씨에게 미리 알려 해외 도피를 도운 혐의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KT 자회사인 KT ENS의 김모 부장과 전 씨, 서 씨 등 일부 협력업체 대표들이 가짜 서류로 총 1조8335억 원을 여러 금융회사에서 부정 대출받아 2894억 원을 갚지 않은 사건이다. 금감원의 김 팀장은 전 씨 등 범인들로부터 뒷돈과 해외 골프 같은 향응을 받으면서 조사 사실 유출과 해외 도피 지원 등 감독당국 직원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먼 직원이 오랫동안 심각한 일탈 행위를 저지르는 동안 금감원의 내부 감찰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김 팀장은 2000년대 중반에 금감원 노조의 위원장을 지내면서 금감원 독립과 정부 영향력 배제 등을 주장했다. 공공기관 노조의 핵심 간부 출신이 겉으로는 금감원 개혁을 외치면서 뒤로는 잇속을 챙긴 것이다. 경찰은 금감원의 다른 직원이나 간부의 공모가 없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

1999년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해 출범한 금감원은 높은 급여, 막강한 권한, 정년 보장, 노조를 모두 갖췄다. 공무원과 민간회사 직원의 좋은 점을 모두 누려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금융회사에 대한 권한이 크다 보니 비리 연루 임직원이 적지 않았지만 개혁은 말뿐이었다.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금감원이 금융감독에 적합한 조직 구조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찰이 어제 발표한 수사결과를 보면 KT ENS는 사기대출에 이용된 허위 매출채권 양도 승낙서에 사용한 법인 인감을 정규 직원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이 관리했다. 금융회사들은 대기업인 KT의 자회사나 협력회사라는 이유로 대출 심사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기업 및 금융회사의 허술한 관리 시스템도 바로잡아야 한다.
#금융감독원#KT ENS#대출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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