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훈]노역 일당, 서민 5만 원 회장 5억 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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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단체 회원인 K 씨는 서울 종로구 옥인교회 앞에서 탈북자 북송 반대농성을 벌이다 공무집행방해죄로 4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돈을 내지 못한 그는 일당 5만 원으로 환산해 80일간 노역장 유치처분을 받기로 하고 1월 서울 남부구치소에 수감됐다. 법원은 일반 서민들의 노역 일당은 90% 이상 5만 원으로 잡는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500억 원을 탈세한 혐의로 2010년 초 광주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을 선고받았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하루 일당을 5억 원으로 환산해 50일간 노역을 하라는 유치처분도 함께 나왔다. 그것도 203일 동안 강제 노역을 처분한 1심 때보다 일당은 2배로 높이면서 벌금을 절반으로 깎아준 것이었다. 이 판결은 이듬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허 전 회장은 항소심 선고 직후 뉴질랜드로 출국했다.

▷곧 귀국할 예정인 허 전 회장은 미납 벌금을 내는 대신 강제 노역을 선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일당 5억 원은 법원 판결 중 최고 액수로 서민 일당의 1만 배에 해당한다. 일각에선 “구치소 노역장에서 하루 8시간 일한다고 하면 시급(時給) 6000만 원이 넘는 초고가 아르바이트나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2008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 돈을 내지 않았을 경우 노역 일당은 1억1000만 원이었다.

▷노역 일당은 법관의 재량으로 결정된다. 유치 기간만 3년 이하로 형법에 정해져 있다. 매년 벌금 납부 대신 노역을 선택하는 서민이 3만 명을 넘는다. 기업인 범죄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5억 원 일당’은 보통사람들의 일당과 비교할 때 너무 불공평하다. 벌금 액수에 따라 노역 일당의 상한선을 법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허 전 회장을 재판한 1, 2심 재판장이 모두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근무한 향판(鄕判)이어서 초고액 일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향판과 지역 기업인의 관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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