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광표]우리 동네 피부과 의원 두 곳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0일 03시 00분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몇 주 전 대상포진에 걸렸다. 처음, 피부에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배와 가슴이 시리고 쑤셔 대상포진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서울 성북구 집 근처의 A피부과를 찾았다. 그곳에선 “아직 피부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대상포진으로 진단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까지 피부는 멀쩡했으니 의사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집에 돌아오고 몇 시간 뒤, 피부가 뜨끈해지며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곧바로 근처의 B피부과(피부비뇨기과)를 찾았다.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이후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며칠 뒤 이런 얘기를 들었다. A의원은 피부미용 위주로 하면서 소소한 피부 치료는 잘 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대상포진 진료를 거부한 것은 아닐까. 물론 추측일 뿐이지만, 이런 소문을 듣자 마음이 씁쓸했다.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 환자를 가려가며 진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대상포진으로 시달리던 한 회사원은 최근 어느 토요일 서울의 집 근처 피부과를 찾았다. 그가 대상포진이라고 밝히자마자 간호사들이 “우리는 미용 위주로 하니 다른 병원에 찾아가 달라”고 했다. 그는 기분이 상했지만 다른 병원을 찾아가기가 번거로워 간호사에게 간곡히 부탁해 진료를 받았다.

한 주부는 조리를 하다 양 손에 화상을 입고 서울의 한 피부과를 찾았다. 그곳에선 “화상 치료는 성형외과가 전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근 성형외과 2곳을 찾았지만 “미용 성형만 하니 차라리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두 사례는 모두 실화다. 진료 거부라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택시 승차 거부도 단속을 하는 마당에.

B의원에 대해선 이런 얘기가 들려왔다. 원래 전공은 비뇨기과인데 수익이 줄어드는 바람에 최근 들어 피부과를 함께 진료하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대상포진 진료에 적극적이었던 것일까. 이런 추측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B의원처럼 주전공 외에 다른 분야를 진료하는 의사들이 늘고 있다. 산부인과가 대표적이다. 저출산이 지속되다 보니 산부인과 의원이 피부과나 요실금 진료에 더 적극적인 경우가 있다. 요즘은 비뇨기과가 심하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젊은 의사들이 외면하고 있다. 2014년 비뇨기과 전공의 확보율은 25.3%로 역대 최저였다. 고령화로 노인환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립샘(선) 등 비뇨기 노인질환 대처에 문제가 생길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원격진료, 병원 자법인, 건강보험 수가 등 의료 이슈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을 겪어왔다. 다행히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기본적인 합의를 도출했지만 이를 두고도 이런저런 말들이 나온다. “의료계의 집단휴진 투쟁이 결국은 수가 인상이었다”라는 비판도 있고, “정부가 의료계의 주장에 끌려 다닌 것 아닌가”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합의를 놓고 어느 쪽이 이겼다는 식으로 단정 지어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최종 입법까지는 논의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논의 과정에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원격진료, 건강보험 수가 등은 모두 중요한 이슈다. 하지만 동네 의원을 드나드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너무 커 보이는 것일 수 있다. 큰 것을 이루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제도도 잘 시행될 수 있고 의료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 우리 동네 피부과 의원 두 곳을 보면서, 동네 의원이 여러모로 건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
#피부과#진료#미용#성형#산부인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2014-03-20 10:52:18

    왜곡된 의료보험으로인한 피해가 국민들에게 전가되는 대표적인 예를 보셨군요. 더 심각한 것은 응급실 운영하면 엄청난 적자를 보기때문에 폐쇄하는 병원들이 늘고있고 흉부외과등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억울하게 사망하는 환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오죽하면 파업을...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