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진흡]김진표와 이동필, 그리고 방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0일 03시 00분


송진흡 산업부 차장
송진흡 산업부 차장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9월 ‘쌀 관세화’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고위 관료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관세화가 여러모로 유리하지만 일부 농민단체나 정치권의 반대로 쉽사리 추진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을 빗댄 것이었다.

당시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현 민주당 의원)이 방울을 걸려고 나섰다. 김 부총리는 국정홍보처 웹사이트인 ‘국정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쌀 개방은 이제 불가피한 시대적 선택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농민단체들이 들고일어났다. 성명을 내고 대통령에게 김 부총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 지역구가 농촌인 국회의원들도 여야를 막론하고 “쌀 시장을 지켜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정부는 방울을 달지 못했다. 의무수입물량을 늘리는 조건으로 10년간 관세화를 유예했다.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이 올해로 끝난다. 다시 관세화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이번에는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방울을 꺼냈다. 이 장관은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쌀 시장 개방(관세화) 여부를 6월까지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10년 전에만 쌀 시장을 개방해 관세화로 전환했어도 의무수입물량 20만 t을 덤터기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관세화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일부 농민단체와 정치권에서 반발하고 있다. ‘농촌붕괴론’과 ‘식량안보론’ 등 과거에 내세웠던 논리를 다시 꺼내들고 정부와의 일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10년 전과 달리 이 장관이 방울을 달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우선 쌀 재배 농민의 인식이 바뀌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8월 쌀을 재배하는 1282개 농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7.7%가 관세화에 찬성했다. 과거 대다수 농민이 쌀 시장 개방 불가론을 외쳤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의무수입물량이 올해 40만8700t(지난해 국내 쌀 생산량 423만 t의 9.7%)으로 늘면서 국내산 쌀 판매에 차질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당사자인 농민들이 또다시 관세화를 미뤄 추가로 의무수입물량을 떠안는 것보다는 수입 가격을 국내 가격 수준으로 끌어올릴 만큼 관세(관세상당치)를 매겨 시장 개방 충격을 완화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뀐 것도 이 장관에게는 기회다. 노무현 정부도 쌀 관세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정권 내부적으로는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던 일부 진보세력이 지속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 관세화 추진 동력이 많이 약화됐다. 반면에 박근혜 정부는 기본적으로 친(親)자유무역 성향을 갖고 있다. 일부 농촌 출신 여당 의원들이 관세화 반대론을 외치고 있지만 대세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다. 이 장관으로서는 정권 내부에서 발목을 잡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얘기다.

이 장관이 6월 지방선거에서 자유롭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현재 정권 내부에서는 이 장관 차출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장관으로서는 선거를 의식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10년 전 관세화 방울을 꺼냈던 김 당시 부총리가 2004년 총선에 여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방울을 집어넣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이번에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

송진흡 산업부 차장 jinhup@donga.com
#김진표#쌀 개방#쌀 관세화#이동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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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14-03-20 17:07:46

    우리나라 인구의 5%도 안되는 농민, 그중 70%가 60세 이상... 그런 극소수의 사람들 이익 때문에 전국민의 97%인 4,800만명 이상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쌀을 먹어야만 하는 슬픈 현실....정치인들의 선동과 극히일부의 농민들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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