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관(民官)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는 형식과 내용 모두 파격적이었다. 당초 4시간가량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오후 9시까지 7시간이나 이어졌고 모든 참석자들의 발언이 TV로 생중계됐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규제개혁이란 단일 주제를 놓고 대규모 민관 토론회가 열린 것도 처음이다.
민간 참석자들이 직접 겪은 규제의 폐해를 생생하게 전할 때마다 주무 장관들은 당황했고, 고개를 숙였다. “공장 두 곳 연결하는 지하통로 만드는데 법은 모호하고 담당 공무원은 소극적이다” “푸드트럭 창업자의 80%가 청년들인데 식품위생법상 푸드트럭 영업활동이 불법이다”는 등 참석자들은 모처럼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제품 인증절차에 대한 중소기업인의 지적을 받자 “콜센터가 2주일 전 개설됐다”고 답했다가 “번호만 받았고 개통일은 26일”이라고 바로잡는 곤욕을 치렀다.
최근 “불필요한 규제는 암 덩어리” 같은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낸 박 대통령은 어제도 ‘규제개혁이 곧 일자리 창출’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공무원 사회가 규제개혁에 저항한다면 자나 깨나 일자리를 갈구하는 국민의 소망을 짓밟는 죄악”이라며 공직자들의 마인드를 바꿀 것을 촉구했다.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장관들을 향해 의식개혁을 역설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 모처럼 속이 다 후련했다는 국민이 적지 않았다.
역대 정권마다 규제 완화를 내걸었지만 효과가 미미한 것은 공직자들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다. 지난해 현재 등록된 중앙정부 규제는 1만5269건에 이른다. 지방자치단체의 규제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공무원들은 규제를 자신들의 ‘밥그릇과 완장’을 보장하는 권한으로 착각해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박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보신주의에 빠져 국민을 힘들게 하는 공무원은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날 토론이 말잔치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규제개혁에 소극적이거나 저항하는 중앙부처 공직자를 반드시 문책하고 지자체에는 정부 지원금을 축소하는 등 강력히 제재할 필요가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변죽’만 울리는 정도였지만 국회의 문제점도 심각하다. 현 정부 출범 후 의원입법을 통해 발의된 법안 10개 가운데 약 7개는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대통령이 규제 혁파를 강조하고 행정부가 법안을 마련해도 국회가 발목을 잡으면 ‘덩어리 규제’는 풀리지 않는다. 정부는 규제개혁을 대기업과 부자만을 위한 정책으로 몰아가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에도 정면으로 맞서야 할 것이다. 국민은 규제개혁에 소극적인 정치인을 표로 심판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쟁적으로 규제개혁에 힘쓰고 있다. 한국 경제는 성장동력이 위축되고 기업 실적이 나빠지고 있다. 신흥국발(發) 경제위기설과 중국발 경제 리스크 같은 대외 악재도 불거졌다. 규제개혁, 특히 보건의료 교육 관광 소프트웨어 같은 서비스 분야의 규제 혁파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금융 보안이나 식품 안전처럼 규제가 꼭 필요한 분야가 아니라면 과감한 규제개혁을 미룰 이유가 없다. 규제의 온실에서 혜택을 누려온 관료의 갑(甲)질과 각종 기득권 이해집단의 저항은 사라져야 한다. 제대로 된 규제 혁파로 성장, 일자리 창출, 소득 증가를 이끌어내는 데 박근혜 정부의 성패(成敗)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