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강경수]빈곤과 전쟁에 시달리는 지구촌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2일 03시 00분


강경수 동화작가
강경수 동화작가
#1. 먼지가 자욱한 지하실에서 고사리 같은 손들이 바쁘게 카펫을 짠다. 손은 성한 곳이 없다. 이제 겨우 10대 초반인 소년 소녀들은 학교가 아닌 카펫 공장의 지하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낸다. 인도에 살고 있는 이 아이들은 부모가 진 빚을 갚기 위해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다.

#2. 루마니아 거리의 맨홀 뚜껑 아래 한 소녀가 잠들어 있다. 플로린이란 이름을 가진 소녀는 거리에 나와 산 지 몇 해가 됐다. 소녀는 길거리에서 추위와 굶주림, 성폭력 등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이 소녀는 공산정권의 몰락과 함께 서민층이 붕괴되며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 중 하나다.

#3. 울창하게 우거진 밀림의 수풀 사이로 총성이 울려 퍼진다. 12세의 칼라미라는 소년은 약에 취해 멍하게 풀린 눈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적이 누군지, 자신이 왜 싸우는지도 모른다. 칼라미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이 발발하자 소년병(少年兵)이라는 신분으로 전쟁터에 끌려왔다.

우리는 가끔 현실을 마주하고도 비현실적이라고 느낀다. 빈곤과 노동 혹은 전쟁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의 현실도 거짓말 같았다. 그 정도로 참혹했다. 이런 현실에 눈뜨게 된 건 5년 전쯤이다. 말라리아에 걸렸지만 단돈 몇 천 원의 약값이 없어 죽음을 기다리는 우간다 소년의 소식을 우연히 접한 게 계기가 됐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겐 더욱 충격적이었고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전쟁이 일어나든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든 불행 앞에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다름 아닌 어린이들이라는 사실을 취재를 할수록 절감하게 됐다. 나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은 아이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는 당사자가 어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동인권에 대한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러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사랑과 우정을 주로 다루는 그림책이라는 장르와 아동인권이란 주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반송받기를 3년간 되풀이하고서야 책이 나왔다. 정식 출간되기도 전에 그 책은 2011년 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큰 상을 받았다. 덕분에 국제아동후원단체에 인세도 기부할 수 있었다. 기부금은 라오스의 작은 마을에 유치원을 세우는 데 쓰였다.

나는 그림책을 통해 도움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라도 변화를 꿈꾸었다. 책을 만들면서 가졌던 바람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얼마 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나는 막연히 존중받아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동의 권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절실히 깨닫게 됐다.

최근 유니세프(UNICEF)가 ‘2014 세계 아동현황보고서’를 발표했다. 5세 미만 어린이가 매일 1만8000명씩 죽어갔다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마음껏 먹지 못하고,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간 아이들이 한 해 660만 명이나 됐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이 뉴스는 조금 느슨해진 나의 마음을 다시 깨워주었다.

이제 새봄이 시작되려 한다. 봄은 항상 기대와 설렘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희망의 기운을 조금은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도 따뜻한 봄의 희망이 나뉘길 기대해 본다. 마침 어제(21일)는 세계 어린이 평화의 날이었다.

강경수 동화작가
#빈곤#노동#전쟁#어린이#아동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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