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자력방호법 연계 처리는 의회민주주의 위반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국민은 또다시 고장 난 국회의 모습을 지켜봤다. 21일 원자력방호법을 처리하기 위한 국회 본회의가 열렸지만 새누리당 의원 10여 명만 의석을 지켰고, 본회의 개의를 위한 정족수 60명을 채우지 못해 본회의는 무산됐다. 본회의 처리를 위해서는 이날 소관 상임위원회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가 먼저 열려 법안을 의결해야 하는데 여야 대치로 인해 회의는 열리지도 못했다.

원자력방호법 처리가 무산된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과의 연계 처리를 고집했다. 민주당이 원하는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사에 회사와 종사자 측이 각각 동수(同數)로 이뤄지는 편성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으로 위헌 소지가 없지 않다. 반면에 우리나라가 가입한 핵물질방호협약의 국내 발효를 위한 원자력방호법은 여야 사이에 견해차가 없다.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원자력방호법을 정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법의 통과는 24,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직전 의장국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하다. 한국을 비롯한 이 회의 참가국들은 2년 전 서울 회의에서 핵물질방호조약의 비준을 약속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국제적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당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올해 2월 새누리당은 한 달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원자력방호법 등 미방위 법안 100여 건의 동시 처리를 민주당에 덜컥 약속해줬다. 뒤늦게 방송법 개정안은 동시 처리 대상이 아니라며 약속을 뒤집으니 민주당이 빌미를 잡은 것이다.

민주당이 하나의 법안을 그 자체로 논의해 처리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다른 법안과 연계해 처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국민은 안중에 없는 당리당략적 태도다.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된 이후 국회에서 법안 연계 처리가 당연시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국회선진화법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빈손으로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어제 출국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원자력방호법의 국회 처리가 무산된 다음 날 호소문을 발표해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다루는 주요한 의제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와주길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헤이그 회의는 현지 시간으로 24일 열린다. 우리나라와 네덜란드의 시차가 8시간이므로 오늘 처리하면 가까스로 직전 의장국의 체면을 살릴 수는 있다. 민주당이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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