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경기 시화·반월산업단지에서 자동차 부품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인이다. 이곳은 국내 최대 중소기업 밀집지역으로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도가 높은 곳이다. 하지만 서해안 매립지에 단지를 조성한 관계로 도시 기반시설이 부족해 인력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건실한 중소·중견기업도 많고, 대기업 못지않은 대우를 해주는데도 젊은이들이 오지 않으려 한다. 매스컴에서 청년실업 문제가 보도될 때도 이곳 기업인들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요즘 대통령까지 나서서 일자리 창출에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이곳 사정은 나아진 게 없다. 젊은 인력이 유입돼야 회사를 키우고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갈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규제 철폐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으니 일단 지켜보겠지만 핵심은 놔둔 채 변죽만 울린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실제 중소·중견기업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펴 줬으면 좋겠다.
정말 시급한 문제는 구인난이다. 정부에서도 일찍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단지 인근에 대학을 여럿 세웠다. 대부분 설립 취지대로 기업에 많은 도움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이 대학들은 인력 공급 파이프라인 역할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줘 중소기업에는 구세주 같은 존재다.
이 대학들의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시화·반월산업단지에 있는 한국산업기술대가 좋은 예다. 이 대학은 1998년 산업자원부가 국가산업단지에 설립한 최초의 4년제 대학이다. 좋은 교수들과 학생들이 오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첫 졸업생을 배출한 2002년부터 6년간은 졸업생 전원이 취업했다. 지금은 졸업생의 80%가 직장을 잡는 취업률 1, 2위의 취업명문 대학이 됐다. 기업으로서도 단지 내 대학은 든든한 원군이다. 인력 충원뿐 아니라 연구개발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이 보유한 최신 장비를 맘대로 쓸 수 있고, 교수들에게 자문해 애로기술을 해결할 수 있어서다. 한국산업기술대와 가족회사 관계를 맺은 기업이 4000여 곳이나 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 회사에도 이 대학 출신 3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시화·반월산업단지에 있는 기업에만 이 대학 출신 수백 명이 다닌다. 이들은 재학 중에 단지 내 기업에서 현장 경험과 실전기술을 익혀 취업 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 재교육이 필요 없어 기업들도 이 대학 출신을 선호한다. 이처럼 지방 중소기업 육성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정부가 세운 대학들 덕분에 그나마 중소기업들은 인력난을 덜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런 대학들이 정부 지원이 없어 등록금 의존 비율이 높아지면서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국가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는 중소·중견기업을 지근거리에서 돕고,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해 인력난을 덜어주는 이런 특성화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가 등록금 부담을 완화하거나 운영비를 지원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중소·중견기업 육성은 말보다는 실제 기업에 직접 도움이 되는 형태로 진행하는 게 현실적일 것이다. 정구용 한국상장사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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