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황금 현물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5일 03시 00분


인류 역사에서 금(金)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보석이었다. 중세 유럽과 아랍에서는 값싼 금속으로 금을 만들겠다는 연금술이 인기를 끌었다. 국부(國富)의 상징인 금을 둘러싼 전쟁도 빈발했다. 19세기 대규모 금광이 발견된 미국 서부, 호주, 뉴질랜드에선 골드러시가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1930년대 금광 개발 열풍이 불면서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되는가 하면 일확천금을 노리다 재산을 탕진한 사람도 많았다.

▷금 보유량은 외환보유액과 함께 한 나라가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실탄을 얼마나 갖췄는지 가늠하는 지표로 꼽힌다. 금융 불안이 확산되면 안전자산인 금의 국제 가격은 치솟는다. 하지만 한국은 금의 실제 보유량과 거래량 같은 통계도 부족할 만큼 부끄러운 현실이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국내 금 거래의 60% 이상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무자료 음성 거래로 추정된다”고 진단했다. 세금포탈을 노린 음성거래 관행은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다.

▷주식처럼 증권사 계좌를 통해 금을 사고팔 수 있는 금 현물(現物)시장이 한국에 첫 개설돼 어제 거래를 시작했다. 공식 명칭은 한국거래소(KRX)의 영어 표기법을 사용한 ‘KRX 금시장’이다. 순도 99.99%의 금을 1g 단위로 거래하되 실물 인출은 1kg 단위로만 가능하다. 중국과 터키는 공식 거래소를 통해 현물거래를 하는 금시장을 열었고, 미국과 일본에서는 금의 선물(先物)거래가 이뤄진다.

▷KRX 금시장 개장 첫날인 어제 거래된 금 매매 종가는 g당 4만6950원으로 기준가격보다 620원 높았고 거래량은 5978g에 그쳤다. 기존 금은방 업주 사이에서는 거래 내용이 낱낱이 드러나는 공식 금시장 참여에 미온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금 현물시장 개설은 결국 국내 금 유통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하경제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주식 채권 등의 금융상품에 집중됐던 투자자들의 자산 운용 폭이 넓어지고 골드뱅킹 같은 금 관련 금융투자상품 발전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금#KRX 금시장#자산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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