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의 우울증 이기기]우울할 땐, 행복한 척 연기를 해 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5일 03시 00분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프랑스의 신경과 의사 뒤센 드 블로뉴(1806∼1875)는 개인적으로는 고통을 많이 겪었던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부 집안에서 태어나 선원이 되기를 원하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계속 공부하는 길을 택했으니 고충이 많았을 것이다.

뒤센을 생각하면 대기업에 취직하기를 원하는 부모의 소망을 뒤로하고 과학이 좋다고, 앞길이 보장되지도 않는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이 생각난다. 지도 교수 마음도 무거운데, 학생 본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뒤센은 의학 학위를 받은 그해 결혼을 했지만, 아내는 첫아들을 낳다가 산후 감염으로 죽고 만다. 그런데 뒤센의 계모는 ‘뒤센의 아내가 아이를 출산할 때 함께 있었던 사람이 뒤센 혼자였다’며 나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결국 뒤센은 아들을 죽은 아내의 친정에 빼앗기고 생을 마감할 때쯤이 되어서야 아들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가정적으로 고통 받았던 그는 연구 분야로 사람의 ‘웃는 표정’에 주목한다. 그는 사람 얼굴 근육에 어떻게 전기 자극을 통해야 웃는 표정을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미소에도 두 가지 형태가 있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 하나는 입꼬리를 올리는 근육과 눈가 아래 주변을 주름지게 하는 근육 둘 다가 수축했을 때 생기는 미소이다. 이는 신경과에서 이른바 ‘뒤센 미소’라 명명된다.

또 다른 하나는 입꼬리를 올리는 근육만 수축하는 미소, 이른바 ‘논(non) 뒤센 미소’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팬암 항공 승무원들이 손님을 예의 바르게 맞기 위해 억지로(?) 짓는 미소라고 하여 ‘팬암 미소’라고 불리기도 했다.

뒤센은 사람이 정말 기쁜 마음이 들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뒤센 미소’를 짓게 된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진짜 미소와 억지 미소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은 뒤센처럼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배우들의 단순히 ‘척’하는 연기에 관중이 몰입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나온 연기법이 그 유명한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 연기’이다. 메소드 연기를 배운 배우들은, 실제로 그 배역의 생각과 감정에 빠져들어 자신이 그 배역이 된 듯이 빙의하여 연기를 하게 되기 때문에 진짜 감정이 표정과 몸짓에 드러나게 되고 관중은 이에 몰입하게 된다. 옛날 중국에서 삼국지연의를 공연하던 중 악역 조조 역할을 한 배우가 어찌나 연기를 실감나게 했던지 관객들에게 몰매를 맞아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정도이다.

재미있는 것은, 뇌가 표정에 영향을 미치듯 표정 자체도 뇌에 피드백을 보내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미간과 눈 주위에 보톡스를 맞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정도가 줄어드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는데, 아마도 즐거운 일이 있을 때의 미소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의 찡그림 강도가 줄어들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되고 있다. 즉 행복하면 웃게 되고 불행하면 찡그리게 되는 것뿐 아니라, 덜 웃으면 덜 행복하고, 덜 찡그리면 덜 불행하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슬픈 운명을 가진 배역에 몰입을 하여 그에 맞는 몸짓과 표정으로 연기를 한 뒤에 감정적으로 탈진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연기파 배우 김명민은 딸을 유괴당한 아버지 역할을 했을 때 실제로 자신이 죽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고 한다.

화가 날 때 계속 화를 내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있으면 부정적인 감정은 더 깊어지고 더 부정적인 사건들이 이어질지 모른다. 종교 경전들이 하나같이 잠시 화가 날 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지는 말라고 조언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성경은 “해(日)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고, 불경에는 화를 내면 수많은 죄가 생기니 제일 먼저 참아야 하는 것이 화내는 마음이라고 가르친다.

오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면, 거북목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 말고 잠시라도 긴장된 자세를 풀고 소파에 기대어 편안한 음악이라도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코미디 영화 한 편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여도 점점 부정적 감정의 강도가 사그라질 것이니 말이다. 부주의하거나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퍼뜨린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곱씹으며 걱정하는 것보다 뒤센처럼 뭔가 몰두할 수 있는 다른 일(연구나 공부?)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류인균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원장 약대 석좌교수
#뒤센 드 블로뉴#우울증#웃는 표정#뒤센 미소#팬암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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