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바쁠 때 웰던 주문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었다. 장담한다. 나뿐만 아니다. 셰프들이 가장 싫어하는 주문은 웰던이다. 일단 오래 걸린다. 최소 20분은 넘게 구워야 한다. 주문을 놓치면 재앙이 벌어진다. 웨이터는 손님이 기다린다고 아우성을 친다. 헤드 셰프의 얼굴은 삶은 랍스터처럼 빨개진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주문은 밀려가고 있었다. 웰던 때문이다. 오븐에 넣어둔 지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도 덜 익은 것 같았다. 헤드 셰프가 물었다.
“안심 웰던에 얼마나 걸리지?” “3분입니다!”
헤드 셰프가 못 들은 것처럼 다시 물었다.
“얼마?” “1분입니다!” “좋아!”
어떻게든 1분 안에 내야 했다. 안 그러면 오늘 밤은 헤드 셰프의 다채로운 영어 욕 강의를 듣게 될 터. 고기를 눌러봤다. 아직 물컹거렸다. 미디엄 웰. 애기 볼처럼 말랑말랑하면 레어, 발뒤꿈치처럼 단단하면 웰던이다. 미디엄, 미디엄 레어는 그 사이 어디쯤이다.
정확하기론 당연히 온도계가 낫다. 고기 내부온도가 50도 이하면 블뤼(bleu·겉만 살짝 익혀 내부가 생고기 같은 조리 형태), 50도는 레어, 55도는 미디엄 레어, 60도는 미디엄, 65도는 미디엄 웰, 그 이상은 웰던이다. 온도가 이 정도로 올라가면 고기에서 핏기가 싹 사라지고 바싹 말라 씹기 힘들 정도로 질겨진다. 타이어와 다를 게 없다. 그러다보니 웰던 주문이 들어오면 ‘어차피 맛을 모르는 인간이니 대충 해줘도 된다’는 심정으로 그릴 한 구석에 놓거나 오븐에 처박아둔다. 그러니 제발 웰던은 시키지 말자.
웰던으로 굽지 않더라도 고기가 안 좋으면 맛있는 스테이크는 불가능하다. 셰프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된다. 마블링도 중요하지만 깊은 맛은 숙성에서 나온다. 어린 소의 고기는 연할지 몰라도 나이든 소의 고기를 숙성시켰을 때 나오는 감칠맛은 없다. 그래서 늙은 젖소 고기를 쓰는 레스토랑도 있다. 젖소는 우유가 목적이라 나이든 소가 많은데, 이 소에서 얻은 고기를 냉장고에 넣고 한 달에서 6개월까지 숙성을 시킨다.
좋은 고기가 있으면 잘 굽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것은 없다. 센 불에 15분 정도 달군 뜨거운 팬에 소금 간을 한 고기를 올려놓는다. 그때 소나기 내리듯 ‘쏴아악’ 하는 소리가 살벌하게 나야 한다. 이렇게 고기를 지지면 단백질의 아미노산이 고온과 반응해 우리가 좋아하는 풍미를 만들고 색깔은 노릇하게 변한다. 수육과 불판에 구운 삼겹살의 맛 차이가 여기서 나온다. 색깔이 곧 맛이다. 고기 겉면을 구워 육즙을 가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이런 말을 그녀에게 하지는 않았다. 스테이크보다 뭐가 중요한지는 아는 나이였으니까. 단지 ‘으응’ 하고 석연찮게 대답했을 뿐이다. 스테이크를 굽던 셰프는 아마 ‘동업자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개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여자 말을 들을 때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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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2)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트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에서
요리사로 일했습니다. 단순한 ‘레시피’가 아닌 음식에 얽힌 이야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요리상식 등 요리를 화두로 한 에세이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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