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니 주말마다 결혼식장에 간다. 식장에 앉아 긴 주례사를 듣고 있자면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이는 이상하다는 듯 내게 물었었다. “엄마, 교장선생님은 왜 ‘마지막으로’라고 말씀하시면서 항상 마지막이 아니야?” 지루하던 차에 ‘마지막’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했다가 실망했던 모양이다.
둘러보면 제대로 듣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막무가내로 주례사가 길면 참 딱하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는 인상적인 주례사를 들었다. 그 주례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당부의 말끝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시를 인용했다. 현악기에서 줄이 서로 간섭을 하지 않되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듯 신랑 신부는 사랑하더라도 각자 따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랑이 간섭이나 구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 귀에 쏙 들어오는 주례사였다.
연리지(連理枝)는 뿌리가 서로 다른 독립된 나무였으나 두 나무의 가지가 붙어서 분리할 수 없는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연리지로 인해 한 나무가 되었을지라도 각자의 뿌리가 다른 고로 하얀 꽃을 피우던 나무라면 여전히 하얀 꽃을, 분홍 꽃을 피우던 나무는 여전히 분홍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리지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상징인 것 같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 그러나 하나가 되어서도 자기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 세상에 한 가지 색깔만 있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을까. 하얀색은 검은색과 함께 있으면 더욱 도드라진다. 배색을 잘 만나면 색깔이 더 돋보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 사람도 그렇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야 나의 개성이 두드러지고 또한 그의 개성도 돋보인다. 나는 나다워지고 너는 너다워지는 것, 그렇게 서로 다르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아름다움이 결혼의 의미가 아닐까?
나는 남편(사진작가)이 글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 참 좋다. 남편 또한 내가 사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좋을 것이다. 나의 글과 남편의 사진이 만나면 서로 보탬이 되니 좋다. 따뜻한 봄날, 새 출발을 하는 젊은 신랑 신부들이 각자 개인의 완성을 통해 사랑의 완성을 이루길 바라본다. 이번 주말에 참석하는 결혼식에서는 어떤 주례사를 들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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