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은 60년 전인 1954년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그가 “3년 안에 제대로 된 모직(毛織) 제품을 내놓겠다”고 선언하자 어느 미국 모직업체 중역은 “만약 그렇게 되면 내가 하늘을 날아 보겠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제일모직은 1956년 제품 생산을 시작했고 1958년 첫 흑자를 올리면서 한국 섬유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제일모직이 국산 양복지를 내놓기 전까지 양복을 해 입으려면 마카오에서 밀수입한 값비싼 영국산 모직에 의존하는 일이 많았다. ‘마카오 신사’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공장을 방문해 “애국적 사업이야. 제일모직의 노력으로 온 국민이 좋은 국산 양복을 입게 됐다”라고 감격했다. 이 회사에 대한 이병철의 애정도 각별했다. 제일모직은 그가 대표이사 직책을 맡았던 몇 안 되는 삼성 계열사 중 하나였다.
▷직물사업으로 출발한 제일모직은 패션, 케미컬, 소재사업에 차례로 진출하면서 혁신을 거듭했다. 회사 설립연도는 삼성물산(1948년) 제일제당(1953년)보다 늦었지만 그룹의 실질적인 모태로 인정받았다. 오랫동안 ‘삼성의 인재 사관학교’로도 불렸다. 이학수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장(부회장), 김징완 전 삼성중공업 부회장, 이상현 전 삼성전자 사장, 송용로 전 삼성코닝 사장, 유석렬 전 삼성생명 사장, 김인주 삼성선물 사장이 모두 제일모직 출신이다.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두 회사가 7월 1일 합병한다. 부품과 소재 기업 간의 시너지 강화가 주요 목적이지만 삼성가(家) 3세들의 후계 분할구도와도 무관하진 않아 보인다. 통합 회사명은 삼성SDI로 결정돼 제일모직은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맞는 해에 법인으로서의 문을 닫는다. 다만 삼성에서 제일모직이 지닌 상징적 의미가 커 작년 12월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넘겨받은 삼성에버랜드가 사명(社名)을 제일모직으로 바꾸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지난 60년 동안 한국의 산업화와 인재 육성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그렇게라도 이름이 유지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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