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어제 “국회선진화법이 되레 정치 불신을 가중시키는 국회마비법이 되고 있다”며 개선을 제안했다. 최 원내대표는 여야 간 쟁점이 없는 법안에 상임위 ‘그린리본’을 달아 본회의로 직행시키고 쟁점 법안은 국회의장단과 교섭단체 대표, 5선 이상 국회의원들로 원로회의를 구성해 타협점을 찾자고 했다. 특히 법사위가 상임위에서 합의한 법안을 정략적인 이유로 사장(死藏)시키는 식으로 ‘상원’ 노릇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사위 체계자구(字句) 심사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법사위원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영선 의원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여당의 일방적 법안 처리 이른바 날치기와 이를 둘러싼 폭력 행위 등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여야가 2012년 5월 합의로 통과시킨 법이다. 법안 처리 의결정족수를 재적의원 5분의 3으로 높여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이라 해도 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할 수 없도록 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천재지변,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각 교섭단체 대표 의원 간 합의가 있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했다. 다수당과 소수당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회를 운영하자는 것이 당초의 입법 취지였다.
그러나 7월부터 지급해야 할 기초연금이 국회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은 국회선진화법 영향이 크다. 지난주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원자력방호방재법안의 국회 처리가 안 돼 각국 정상 앞에 빈손으로 서야 했던 것도, 지난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52일 동안 처리되지 않아 새 정부의 출항이 사실상 지연된 것도 국회선진화법 때문이었다. ‘선진화’라는 이름과 딴판으로 소수당의 뜻대로 법안 처리가 안 되면 모든 법안 처리를 올스톱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된 것이다. 이런 국회법을 개선하지 않으면 누가 여당이 돼도 식물국회는 피할 수 없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당시 원내대표)와 쇄신파 의원들이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했으면서 이제 와 개선을 거론하는 것이 국민의 눈에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도 소수당이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다는 문제점과 위헌성 논란이 제기됐지만 새누리당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잡기 위해 밀어붙였다. 법의 폐기가 어렵다면 ‘제3의 출구’를 찾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졸속 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한 사과와 책임 규명이 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