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음식강산]서천 앞바다에 쭈글쭈글 주꾸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일 03시 00분


주꾸미는 못난이다. 이름부터가 쪼글쪼글 볼품없다. 영락없는 ‘쭈그러진 깡통’이다. 어디 맏형 문어에 비길 수 있을까. 문어(文魚)는 팔척장신(2∼3m) 헌헌대장부다. 이름도 글월 ‘文(문)’이다. ‘문자 속을 아는 물고기’인 것이다. 경상도 양반 제사상에 괜히 오르는 게 아니다.

주꾸미는 문어, 낙지와 한집안이다. 모두 팔이 8개다. 오징어, 갑오징어, 꼴뚜기는 팔이 10개다. 낙지(60∼70cm)는 문어보다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잘빠졌다. 주꾸미보다 3배쯤 크다. 주꾸미(15∼20cm)는 몸통(머리)과 팔(다리)이 딱 붙은 ‘숏다리’, 아니 ‘숏팔’이다.

주꾸미 몸통 속엔 위, 간, 아가미, 생식기 등 모든 기관이 들어있다. 사람들은 그래도 몸통을 ‘머리’라고 부른다. 팔을 ‘다리’라고 우긴다. 알이 어떻게 머릿속에 들어있을까. 미련퉁이에 인숭무레기. 어휴, 기가 막혀! 주꾸미가 웃는다.

충남 서천군 마량리 500년 묵은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69호)엔 도대체 누가 불을 처질렀을까. 요즘 핏빛 꽃숭어리가 노을처럼 피어나, 바람결에 후드득! 떨어지고 있다. 모가지가 통째로 땅바닥에 나뒹군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허공에 한 획을 긋는/단호한 참수’(문정희 시인). 그 너머로 붉은 해가 서해 바다를 벌겋게 물들이며 미끄덩! 물속으로 사라진다.

주꾸미는 못생겨도 맛있다. 동백꽃 피고 지는 4월이 으뜸이다. 문어의 오동통 쫄깃쫄깃 씹는 맛과 낙지의 부드러운 감칠맛을 주꾸미는 다 품고 있다. 벚꽃이 우르르 피어날 때쯤 한창 알을 슨다. 먹통에 쌀밥(밥알)이 터질 듯 탱탱하다. 한 입 깨물면 오도독! 미더덕처럼 터진다. 목련꽃봉오리가 투두둑 벙글듯 연발탄이다. 고두밥 혓바닥에 궁굴리듯, 김 펄펄 나는 고슬고슬 햅쌀밥 잇몸 사이에 어르는 듯, 엇구뜰하고 꼬소롬하다.

주꾸미는 회로 먹고, 무쳐 먹고, 데쳐 먹고, 삶아 먹고, 볶아 먹고 또 구워 먹는다. 삼겹살과 섞어 철판에 구워 먹는 ‘주삼불고기’는 얼씨구절씨구 환상의 조합이다. 삼겹살을 먼저 익힌 뒤, 주꾸미는 살짝 데쳐야 궁합이 딱 맞는다. 데칠 땐 주꾸미 몸통이 붉은색을 띨 때가 안성맞춤이다. 회로 먹을 땐 먹통의 검은 먹물에 찍어 ‘초서 휘갈기듯’ ‘장지에 난을 치듯’ 휘뚜루마뚜루 먹는다. 생물에 참기름을 발라 졸깃졸깃 달곰새금 먹기도 한다. 먹물에 라면사리를 넣어 바따라지게 끓여 먹기도 한다.

서천 동백나무숲 부근엔 주꾸미집이 지천이다. 그중 서산회관(041-951-7677)은 평일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평일 1000여 명, 휴일 1500여 명이 몰린다. 30여 년의 손맛 ‘주꾸미명인’ 김정임 씨(61)의 ‘된장육수 비법’ 덕분이다. 주꾸미 샤부샤부는 묽은 된장육수에 냉이, 팽이버섯, 미나리, 쑥갓, 깻잎, 당근, 양파 등 야채로 맛을 낸다. 된장육수에 칼칼한 청양고추와 미더덕을 넣는 곳도 있다. 주꾸미철판볶음도 들깨와 김가루를 빼놓고는 재료가 거의 같다.

주꾸미는 그물로도 잡고, 소라껍데기로도 잡는다. 소라껍데기에 끈을 매달아 바닷물에 늘어뜨려 놓으면 된다. 암컷 주꾸미가 ‘자기 알 낳으라고 그런 줄 알고’ 천연덕스럽게 들어가 무거운 몸을 푼다. 암놈만 잡히니 ‘덩더쿵 지화자’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물로 잡는다. 철없이 날뛰는 수컷들은 그물코에 걸리기 마련이다. 그게 세상 이치다. ‘암컷 없는 세상’에 수컷들만 득시글하면 목숨 부지하기 어렵다.

주꾸미는 초승달이나 보름달이 뜰 때(음력 1, 15일) 잘 잡힌다. 썰물과 밀물의 차이가 가장 클 때, 새우 먹으러 슬슬 연안 쪽으로 마실 나온다. 마침 오늘이 음력 삼월 초사흘. 서천, 대천 태안반도나 격포, 곰소 변산반도 어디쯤에 가서 주꾸미 한 접시 놓고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어쩌고 하며 거드렁거리며 놀아볼 일이다. 가는 세월 어쩔거나. ‘한잔 더 먹소! 자네도 좀 먹게’ 하며 얼크렁설크렁 어우러져볼 일이다.

주꾸미는 누가 뭐래도 ‘뼈대 있는 집안’이다. ‘글(文)을 아는’ 문어 문중이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를 끌어안고 올라온 것도 주꾸미였다. ‘혹시 깨질세라’ ‘누가 뺏어갈세라’ 청자를 꽉 껴안고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엄청난 흡인력의 빨판으로 그러안고 있었다. 수천 점의 청자는 그렇게 햇빛을 보았다. 누가 감히 주꾸미를 무녀리라고 하는가. 적어도 지금은 꽃보다 주꾸미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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