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법정, 속기에서 녹음 시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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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속기학원도 찾기 힘들지만 우연히 ‘속기학원’ 간판을 볼 때마다 녹음을 할 수 있는데 왜 아직도 속기를 할까 궁금증이 든다. 속기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귀를 스쳐 흘러가 버리는 음성보다는 종이에 고정된 문자가 활용도가 높다. 녹음을 해봐야 녹취록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 녹취록을 만드는 데 다시 속기사가 개입하므로 처음부터 속기를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낫다. 디지털 시대에도 속기는 활용도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에는 공판조서란 게 있어서 재판 과정을 기록한다. 조서는 모든 진술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치 않다고 여겨지는 것은 빼고 요약하는 방식으로 작성된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가 말한 것과 다르게 기재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당사자는 정정을 요청할 수 있는데 그 근거가 모든 진술을 그대로 기록하는 속기록이다. 물론 속기사가 작성하는 속기록은 어디까지나 보조이고 법원사무관이 작성하는 조서가 중심이다.

▷속기의 역사는 녹음의 역사보다 훨씬 길다. 하지만 우리나라 형사소송에서는 그렇지 않다. 1995년부터 법정에 본격적으로 속기와 녹음이 도입됐다. 다만 최근까지는 녹음이 기술적으로 번잡해 속기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정확하기로는 속기보다 녹음이다. 속기사도 사람인지라 실수로 빠뜨릴 수 있다. 속기사가 자기 검열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빼는 것도 있다. 가령 법관의 막말 같은 것이다.

▷꼭 법관의 막말을 가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과거보다 훨씬 예민해진 사건 당사자의 시비에 대비하는 데 녹음만 한 것은 없다. 대법원은 내년부터 전국 법원의 모든 재판과정을 녹음하도록 하는 법정녹음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지금은 법관의 판단에 의하거나 사건 당사자의 요청이 있을 때만 한다. 녹음과 속기는 선택적이어서 녹음을 하면 속기할 필요가 없다. 대법원은 아예 녹음된 자료로 공판조서를 대체해 조서 작성에 필요한 인력을 줄일 계획까지 갖고 있다. 문자 중심의 법정이 음성 중심의 법원으로 가는 가속페달을 밟았다는 느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속기#녹음#녹취록#재판#법정녹음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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