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경환 씨와 금자 씨의 “너나 잘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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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나온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주인공 이영애가 13년간 옥살이하다 출소하는 장면. 목사가 “죄짓지 말고 착하게 살라”며 두부를 내밀자 금자 씨는 싸늘한 표정으로 “너나 잘하세요!” 하며 쏘아붙인다. 영어로는 ‘Mind your own business’쯤 되겠다. 사회의 위선을 꼬집은 금자 씨의 이 말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시대정신’처럼 유행했다. 이 말이 북한으로 건너가선 “너나 걱정하세요”로 둔갑해 인기를 모았다.

▷“너나 잘해”의 원조는 법정 스님의 스승으로 조계종 종정을 지낸 효봉 스님(1888∼1966)이다. 한 제자가 “스님, 술 마시고 여자를 만나는 스님이 있습니다”라고 동료 스님을 고자질하자 효봉 스님은 “네가 보았단 말이냐? 너나 잘해라, 이 녀석아!” 하며 꾸짖었다. 남을 험담하는 것을 싫어한 스님의 답변이 압권이다. 작년 말 망년회 때 “너나 잘해”는 인기 건배사였다. ‘너와 나의 잘나가는 새해를 위해’를 줄인 말이다.

▷그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국회 연설 도중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너나 잘해”라고 소리쳐 막말 논란을 빚고 있다. 안 대표는 전날 기초공천 공약 폐기를 대통령 아닌 최 원내대표가 사과한 데 대해 “충정이십니까, 월권이십니까”라고 비꼬듯 물었다. 최 원내대표가 발끈한 이유는 ‘월권(越權)’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 개정을 책임지는 여당 원내대표에게 월권 운운했으니 ‘대통령 똘마니 아니냐’는 조롱으로 들릴 수 있겠다.

▷안 대표도 사석에서 “정치하면서 온갖 잡× 많다는 것 알게 됐다”고 했다가 구설에 올라 있다. 최 원내대표가 좀 참았다가 사석에서 금자 씨를 흉내 내며 “새 정치 한다더니, 너나 잘하세요” 했더라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이 됐을지도 모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쩌랴. 같은 말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품격과 의미가 달라진다. 금자 씨가 하면 재밌는 말이 경환 씨가 하니까 사달이 났다. 실은 신년회 건배사였다고 둘러대야 하나.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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