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 등기이사들의 연봉이 공개되자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경영실적이 좋지 않은데도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지난해 박종원 전 사장에게 퇴직금 159억 원을 줬고, 하나금융그룹은 김승유 전 회장에게 35억 원의 특별 퇴직금을 지급했다.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은 수십억 원의 주식성과급을 받을 예정이다.
퇴직금 지급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하나금융은 퇴직금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이사회가 결의했다. 코리안리는 직원에겐 매년 월 통상임금의 1.2배를 퇴직금으로 쌓고, 사장에겐 4배를 쌓아 퇴직금 적립 기준에 격차를 두었다. 하지만 성과와 동떨어진 과도한 퇴직금 챙기기를 납득할 금융 소비자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지난해 국내 18개 은행의 순이익은 2012년 대비 ‘반 토막’ 수준인 4조 원으로 떨어졌다. KB 신한 우리 하나 등 4대 금융그룹은 작년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18∼82.3% 줄었다. 그런데도 4대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의 작년 연봉은 20억∼30억 원이나 됐다.
어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 CEO들의 과도한 연봉과 퇴직금 지급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기업의 급여에 금융당국이 간여하는 것이 옳으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소유는 민간이라 해도 국가 인허가 사업에 기반을 두고 예대 마진 등 각종 특혜를 받는다. 외환위기 때는 막대한 공적자금도 투입됐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회사들이 부도 위기에 처하자 국민 세금을 투입했다. 이렇게 살아난 회사들이 “핵심 인재 확보에 필요하다”며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을 퍼줬다. 그러니 미국인들이 분노해 ‘월가를 점령하라’는 운동을 벌이며 CEO 연봉 규제에 나선 것이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는 적극적인 금융회사들이 고객 개인정보는 수억 건 유출시키고, KT ENS 협력업체들에는 1조8000억 원대의 대출사기를 당했다. CEO들이 고객의 돈을 자기 돈 불리듯 알뜰하게 경영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금융회사와 금융당국은 사고가 터지면 ‘뼈를 깎는 개혁’을 약속했다가 잠잠해지면 나 몰라라 한다. 금융당국 사람들이 이번에도 그런다면 자신들이 퇴임 후 ‘낙하산’ 타고 내려갈 자리라서 봐준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