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면 늘 같은 결심을 합니다. 올해는 절대 속지 말자고. 그러나 정작 그날이 되면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양이 된 듯 적들의 거짓말에 여지없이 ‘낚이고’ 맙니다. 마음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동심이 4월 1일만 되면 되살아나는 걸까요. 매년 만우절이 돌아올 때마다 반복되는 에피소드들입니다.
○ 어쩔 수 없어 널 속일게(god ‘거짓말’ 중에서)
일찌감치 칼럼 주제를 만우절로 정해 놓고 ‘이 녀석 좀 봐라’라는 심정으로 찬찬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둘러봤습니다. 내성이 생겼는지 이제는 어지간한 거짓말에는 눈도 껌뻑이지 않았습니다. 기사 형태로 ‘미국 프로야구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 선수가 국내 리그의 롯데 자이언츠로 전격 이적하기로 했다’고 쓴 낚시 글에 대해서는 “그 정도 생각한 공이 가상하다. 기왕 할 거면 합성 사진이라도 한 장 넣지”라며 관용을 베푸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고전적인 농담은 더이상 SNS에서 힘을 발휘하기 힘들었습니다. 페이스북 본인의 상태를 ‘싱글’에서 ‘연애 중’으로 바꾼 지인들의 거짓말에 너희도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으로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속기도 많이 속았다고 이 공간을 빌려 고백합니다. 감쪽같이 속았던 건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대교에서 실시한 영화 ‘어벤져스2’ 촬영이 사실은 한강에 떨어진 미확인 비행물체를 비밀리에 인양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벌인 일이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국내 담당자들이 어벤져스2에 나오는 배우 스칼릿 조핸슨을 좋아해 이 영화로 정했다’는 등 마치 고위 관계자들만 알 법한 고급정보(?)를 글 곳곳에 녹여 읽는 이로 하여금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글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상황 파악을 한 저는 해당 링크 주소를 끊임없이 지인들에게 메신저로 퍼다 날랐습니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죠.
○ 웃어볼까요 조금 낫나요(카니발 ‘농담’ 중에서)
만우절을 기회로 활용한 각 업체들의 마케팅도 눈에 띄었습니다. SNS 상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패스트푸드 업체 롯데리아가 전국 196개 매장에서 실시한 햄버거 증정 이벤트였습니다. 롯데리아는 지난해 만우절부터 ‘농담하는 날을 맞아 고객들과 매장 직원들 모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이라는 취지를 내걸고 직원에게 ‘불고기 버거 먹으러 왔소! 맛있었소’처럼 미리 정해진 대사를 하는 고객들에게 햄버거를 무료로 나눠주었습니다. 매장당 준비한 100여 개가 순식간에 나갔다는 후문입니다. 햄버거를 받은 누리꾼들은 인증 동영상을 SNS에 올렸습니다. 얼굴이 드러날까 두려웠는지 로봇 가면을 쓰고 이벤트에 참여한 한 남성의 동영상은 3일 오후 1시 현재 8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만우절에 걸맞게 블록버스터급 농담을 선보인 회사도 있었습니다.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는 1일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 500명 우주여행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올렸습니다. ‘6박 7일 달(月) 여행 1억432만 원’ 등 자세한 가격 정보에 회사 사장의 인터뷰까지 담으며 실감나는 허풍 마케팅을 선보였습니다. 한 누리꾼은 ‘제가 수성(水星)에 가봤는데 수성에 물만 많을 줄 알고 수영복만 가져갔다 낭패를 봤다’는 위트 있는 댓글로 화답했습니다. 만우절이니까 가능한 웃고 넘길 수 있는 이벤트들이었습니다.
정작 만우절을 강타한 진짜 뉴스는 마냥 웃고 넘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전날 최초로 공개된 대기업 등기임원 연봉 분석 결과 지난해 1월부터 구속 수감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가장 많은 301억 원의 보수를 받았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문득 티켓몬스터가 내놓은 최고급 상품 19억9710만 원짜리 19박 20일 수성 패키지가 그다지 비싼 상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봉 5억 원이 넘는 상장회사 등기임원들의 연봉이 공개된 날, 보통 월급쟁이들은 평생 만질 수도 없는 큰돈을 연봉으로 받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 올해 만우절은 수많은 월급쟁이들의 어깨를 처지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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