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57>은근하고 교묘한 자기자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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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등학교 동창모임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자 동창들 사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 여자 동창이 그 원인 제공자로 지목됐다. 그녀가 SNS에 자주 등장한 이후 여자 동창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남자들은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글을 분석해보니 ‘실황중계’의 성격이 강했다. 이런 식이었다. 애를 유치원에 보냈다. 요가스쿨에서 모 유명 연예인과 함께 운동을 했다. 점심은 어떤 식당에서 먹었는데 잘생겼다는 그 셰프는 안타깝게 보지 못했다. 후식은 모 디저트 식당. 아이 학원 끝나기를 차에서 기다리면서 셀프 카메라. 남자들은 그런 글의 어떤 점이 다른 여자 동창들에게 반감을 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하루 일과를 수다 떨듯 전하는 것뿐인데.

각자가 아내에게 분석을 의뢰한 후에야 실황중계 글의 비밀이 드러났다. 아내들이 탐지기를 작동시키자 그런 유형의 글에 묻혀 있던 ‘자랑 지뢰’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분석을 해보면 이렇다. 아내가 그 유치원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별세계’였다. 해당 요가스쿨은 뜨내기 회원의 등록 장벽이 매우 높은 곳이었다. 점심을 먹었다는 식당은 양은 적고 값은 비싸기로 유명한 데였다. 디저트 식당 메뉴의 가격을 알고 나자 몇몇 남자 동창은 쓰러질 뻔했다. 마지막으로 셀프 카메라. 우연을 가장했지만 조수석에 슬며시 보이는 화나게 하는 가격의 가방.

여성은 일상의 온갖 것들을 동원해 은근하고 교묘하게 자랑한다. 다른 여성들이 그런 포인트들을 일일이 확인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특별한 결과’를 대놓고 자랑하는 반면, 여성은 ‘일상’이란 토양 속에 지뢰를 매설해 놓는 방식으로 자랑을 한다. 자기 자랑을 직접적으로 하기보다는 자기 주변을 풍경화처럼 보여주며 적절한 곳에만 포인트를 주어 알아볼 사람만 알아보게 하는 식이다.

여성들이 실황중계 방식의 자랑 지뢰에 가급적 반응을 않거나 아예 접속을 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재수 없어서 알아주기도 싫은 것이다. 운영진은 동창모임의 건전한 활성화를 위해 ‘자랑 판정관’을 도입하기로 했다. 전문가라면 시비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동창 가운데 눈썰미와 센스가 탁월한 여자 변호사에게 판정을 맡기기로 했다.

누군가 자랑 글을 올리면 판정관이 댓글을 달게 된다. ‘가방 자랑했으니 2만 원. 아이 자랑까지 했네. 합이 7만 원.’ 자랑 값을 모아 회비에 충당하기로 했다. 자랑한 만큼 돈을 내게 되니 배 아팠던 사람들로선 환영할 만하다. 물론 자랑 값 부과를 피하기 위한 신종수법이 끊임없이 나오겠지만.

한상복 작가
#여자#SNS#실황중계#자랑#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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