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경남 진주지역에 떨어진 운석은 71년 만에 우리나라에 낙하가 목격되고 회수된 두 번째 운석이자, 국내 소유가 되는 첫 번째 운석이다. 대영박물관 운석연감에 기록되어 있던 과거 우리나라의 운석은 모두 네 개로 1924년 전남 운곡, 1930년 경북 옥계, 1938년 함경남도 소백, 그리고 1943년 전남 고흥군 두원면 등지에서 회수된 것들이다.
마지막 두원 운석을 제외하고는 현재 운석의 실체를 파악할 길이 없다. 두원 운석(석질운석으로 오디너리 콘드라이트 L6 타입)은 당시 일본인에 의해 반출되었다가 1999년 영구임대 형태로 국내에 들어왔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운석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문종 2년(1452년) 함길도 용진현, 성종 23년(1492년) 경상도 진주, 명종 18년(1563년) 경상도 산음현, 현종 13년(1672년) 영천군, 숙종 40년(1714년) 경기도 안성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실체는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운석은 회수될 당시 정황에 따라 낙하운석과 발견운석으로 나뉜다. 낙하운석은 유성낙하의 현상이 관측되고 떨어진 장소에서 회수된 것을 가리키고 발견운석은 유성낙하가 목격되지 않은 채 세월이 흐른 다음 땅에서 회수된 것이다. 현재 지구에서 수집된 4만6000여 개 운석 가운데 대략 2% 남짓만이 낙하운석이다. 유성낙하가 목격되고 회수된 운석은 그다지 많지 않은 셈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낙하운석 중 하나로 제일 유명한 것은 1492년 11월 7일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지역 엔시스하임 마을에 떨어진 것이며, 127kg의 석질운석(오디너리 콘드라이트 LL6 타입)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낙하운석이 진주 운석(석질운석으로 오디너리 콘드라이트 H 타입)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나온다. 성종 23년(1492년) 5월 16일의 기록인데 당시 경상도 관찰사가 진주에 낙하한 운석을 조정에 보고한 것이다. 운석이 떨어져 땅속으로 1척(尺)이나 들어갔고, 겉은 검고 속은 희며, 모양은 공이나 타원형으로 손톱으로 긁으면 가루가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진주에 떨어진 운석은 최근 발견된 진주 운석과 아주 흡사하다. 손톱으로 긁으니 가루가 떨어진 것으로 보아 석질운석으로 판단되는데 이 또한 최근의 진주 운석과 유사하다. 물론 자세한 석질운석의 분류는 알 도리가 없지만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인류가 목격하고 회수한 초기 운석 중 하나인 프랑스 엔시스하임 운석이 낙하하던 그해 진주에도 운석이 떨어졌던 것이다. 보고가 되지 않은 것도 있을지 모르나 남아있는 기록으로만 본다면 1492년 이후 522년 만에 크기가 비슷하고 종류도 유사한 운석이 다시 진주를 방문하였다. 신기할 따름이다. 가히 진주는 운석의 땅이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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