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외곽에서 20kt(킬로톤·다이너마이트 1000t의 폭발력) 핵탄두가 장착된 미사일이 발사됐다. 아군 방어선 전역에서 거대한 불꽃이 타올랐고, 반경 23km 내 모든 생물이 50% 이상 살상됐다. 한 시간 뒤 오키나와 기지를 이륙한 미 공군의 B-52G 폭격기가 동해상에서 핵 탑재 크루즈 미사일 1발을 투하했다. 잠시 뒤 북한의 영변 핵시설과 군 기지는 초토화되고….’
캐스퍼 와인버거 전 미국 국방장관이 1997년 펴낸 ‘넥스트 워(Next War)’에 묘사된 북한의 핵 공격 시나리오다. 미 국방부의 ‘워 게임’을 바탕으로 쓴 책에서 저자는 북한의 핵전쟁 시나리오의 근거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북한 수뇌부의 예측불가성과 광폭함이다. 가상 전쟁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북한 최고 지도자와 군부는 적화통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전세를 뒤집고, 청와대 깃대에 인공기를 꽂을 수 있다면 핵무기 사용도 불사한다. ‘설마…’ 하던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 기습타격에 완벽하게 허를 찔린다.
최단 시간 내 서울 함락을 위해서라도 ‘제한적 핵 공격’은 북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북한은 남침 36∼48시간 안에 서울을 손에 넣어야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선 개전 초기 최전방의 한미연합군을 신속히 와해시킨 뒤 휴전선을 돌파해야 한다. 장사정포와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이 여의치 않을 경우 소규모 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핵무기는 미 증원 전력에 맞설 ‘최후 수단’이기도 하다. 스텔스 전투기와 폭격기, 항모전단 등 막강한 첨단전력을 갖춘 미 증원군을 재래식 무기로는 당해낼 수 없음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 한미연합군의 북진 반격으로 체제 붕괴에 직면할 경우 북한은 동시다발적 핵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저자는 우려한다.
이에 대해 당시 대부분의 한미 정부 당국자들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일축했다. 핵실험도 하지 않은 북한의 핵능력을 과대평가한 소설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세 차례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까지 발사한 북한의 핵위협은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은 지 오래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실전배치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우려가 성큼성큼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싱크탱크인 미국 신안보센터(CNAS)는 최근 북한이 3년 안으로 전술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고, 유사시 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이미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군 당국은 북한이 아직 소형 핵탄두를 개발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40여 년간 핵개발에 ‘다걸기(올인)’한 북한의 핵능력을 지나치게 간과하는 건 아닐까. 북한의 핵능력은 인도, 파키스탄과 맞먹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두 나라는 1990년대 후반 두세 차례의 핵실험 뒤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해 핵미사일을 개발한 전례가 있다. 북한이 조만간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노동미사일을 전격 공개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의 핵무기고가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올 2월 문장렬 국방대 교수는 북한이 지금까지 총 238kg의 핵물질을 확보했고, 5년 뒤 40기가 넘는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라늄 농축시설과 실험용 경수로에서 핵물질을 계속 뽑아낸 뒤 이를 최대한 무기화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의 소형화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핵무기 제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대량의 핵무기를 거머쥔, 지구상의 가장 호전적인 정권과 휴전선을 맞댄 채 핵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상황은 끔찍한 악몽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킬 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는 2020년대 초에나 구축된다. 지난 20년간 북한의 핵 시계를 멈추기 위한 대북제재 등 외교적 노력도 거의 효과가 없었다.
대한민국이 북핵의 인질이 될 때까지 수수방관할 것인가. 국가생존이 걸린 초유의 위기로 보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것인가. ‘북핵 딜레마’를 해결할 정부가 국민적 지혜를 모아 묘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넥스트 워’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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