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페이고法’ 통과 안 되면 재정폭탄 못 막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9일 03시 00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은 2012년 10월 국회법 개정안과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치인이나 정부가 재정지출이 늘어나는 법안을 발의할 때는 재원조달 방법을 담은 법안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는 이른바 ‘페이고 법안’이다. 페이고(pay-go)란 ‘돈을 벌어들인 만큼만 쓴다’는 ‘pay as you go’를 줄인 말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무분별한 선심성 포퓰리즘을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만우 법안’을 비롯해 새누리당 이한구 이노근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 그리고 정부가 발의한 페이고 관련 법안들은 본회의는커녕 상임위 논의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상당수 의원이 자신들의 ‘돈 쓰는 권한’이 축소될까봐 반대해서다.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합친 국가 채무는 약 483조 원(국민 1인당 평균 961만 원)으로 1년 전보다 39조 원 늘었다. 작년 관리재정수지는 21조 원 적자로 미국발(發)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악이다. 한국의 국가 채무는 1997년 60조 원에서 2002년 133조 원, 2007년 298조 원으로 최근 15년 동안 급증했다. 국내외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역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 탓이 크다.

나라곳간 사정이 이처럼 엄중한데도 6·4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과 예비 후보들은 벌써 ‘공짜 버스’로 포장한 ‘세금 버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동남권 신공항 등 선심성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주요 공약에 드는 재원이 벌써 30조 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자체 선거가 끝나면 지방발 재정파탄의 위험이 커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어제 “세금으로 거둘 수 있는 돈의 한계는 분명한데 써야 할 곳은 눈처럼 불어나고 있다”며 “페이고 관련 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여당이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했다가 뒤늦게 나서는 모습은 한심하지만 이제라도 야당과 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새정치연합 측은 “의원의 입법권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매우 불순한 것”이라며 반대부터 하는 모습이다. 민생과 경제를 걱정한다면 법안 통과에 협조하는 것이 10년 집권 경험을 가진 제1 야당에 걸맞은 자세다.

지방선거 후보들에게는 ‘공약 실명제’를 도입해 나중에라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도 달콤한 포퓰리즘 공약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영국 저널리스트 윌리엄 리스모그는 “역사적으로 빚을 자꾸 져 가며 이를 갚지 않으려 한 시도는 모두 눈물로 종말을 고했다”고 경고했다. 개인이든 국가든 누구도 ‘빚의 복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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